후쿠자와 유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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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년 1월 10일 - 1901년 2월 3일)는 일본 개화기의 계몽사상가, 교육가, 저술가이다. 1860년 미국 방문과 1862년 프랑스-영국-네덜란드론 방문, 1863년 영국 만국박람회 참석과 러시아 방문 이후 일본의 근대화, 개항론을 주장하였으며 서구식 의회 제도와 교육 평등권의 도입을 제창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군국주의와 국가사회주신의적 정책에 반발하고 자유 민권 운동을 추진하였다. 여성 참정권 운동과 조선의 개혁 운동을 지원하였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에 사람 없다"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1984년 ~ 2004년의 일본은행권 D호 1만천 엔권, 2004년부터의 E호 1만 엔권에 초상화가 쓰여 ‘유키치’라는 말이 1만 엔권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게이오 대학교의 설립자이다. 또한 조선 개화기의 사상가 김옥균, 유길준, 윤치호 등의 스승이자 개화파에 영향을 주었다.
어록
[편집]- "압제도 내가 당하면 싫지만 내가 아니라면 남을 압제하는 것은 몹시 유쾌하다.[1]"
- 인간의 이중잣대, 이중적 행동을 조소하면서
- "중 노릇을 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세상에 이름을 남기도록 하겠다고 결심한 그 괴로운 속마음, 그 깊은 애정, 나는 그것만 생각하면 봉건적 문벌제도에 분노하는 동시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어 혼자서 울곤 했다.[2]"
- "몇년 동안 수영을 배워 간신히 헤엄칠 수 있게 되자 수영을 포기하고 나무타기를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2]"
- "서양문명의 유행은 막을 방도가 없다. 일본은 문명화를 받아들여 아시아에서 새로운 축을 마련했다. 그 이념이 '탈아(脫亞)'다. 근대화를 거부하는 중국과 조선은 서양이 압박하는 가운데 독립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일본은 이웃과 헤어져 서양열강과 함께 움직이자. 우리는 마음속에서부터 아시아의 나쁜 친구를 사절해야 한다.[3]"
- "공부를 하면 어떻게든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번에는 있어봤자 대단한 출세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2]"
- 형이 죽고 난 뒤 집안 상속인 자리를 포기하고 오사카로 떠나면서
- "나는 어떻게든 양학이 성행하도록 해서 반드시 일본을 서양 같은 문명 부강국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 "서양에 대한 나의 신념이 뼈에 사무쳐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2]"
- 1860년 미국 시찰 생활 초반에 미국 생활의 부적응을 겪으면서
- "중국인은 장구벌레, 개돼지, 거지, 오합산적이다."
- "일본군이 벌레와 짐승을 죽이는데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3]"
- "서울에 주둔중인 청국병을 몰살하라.[3]"
- "동양에는 유형의 것으로는 수리학, 무형의 것으로는 독립심 이 두 가지가 없었다. 정치가가 국사를 처리하는 것도, 실업가가 상거래와 공업에 종사하는 것도, 국민에게 보국의 생각이 많고, 가족이 단란한 정으로 충만한 것도, 그 유래를 따져보면 자연히 그 근본을 알 수 있다. 비근한 예를 들면 지금의 이른바 입국이 그렇고 확대해서 말하면 인류 전체가 그렇듯이 인간만사는 수리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으며 독립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는 소중한 진리를 우리 일본에서는 가볍게 여기고 있다.[2]"
- 1862년 귀국 직후, 일본 사회에 서구 문물 수용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 “인간 사바세계(裟婆世界)의 지옥이 조선의 경성(京城, 서울)에 출현했다. 나는 이 나라를 보고 야만인이라 평하기보다 요마악귀(妖魔惡鬼)의 지옥국(地獄國)이라 평하고자 한다.[4]”
- "조선은 아시아의 일소 야만국으로서 그 문명의 상태는 우리 일본에 미치기에는 너무 멀리 뒤떨어져 있다. 이 나라와 무역을 해서 이로울 것이 없다. 이 나라와 교류해서 우리가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 "(조선은) 학문은 받아들이기에 부족하고 그 병력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멋진 것은 일생을 바쳐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인간으로서 교양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것은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은 타인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남을 위해 봉사하고, 결코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든 사물에 애정을 갖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5]" -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와 같다.[3]"
- "조선인의 완고 무식함은 남양의 미개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3]"
- "조선은 가령 그들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속국이 된다고 해도 반갑지 않은 나라다. 그러므로 조선과의 교제가 우리의 희망대로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은 일본의 독립을 위한 권세를 강화하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갑신정변 실패 이후 개화파 정치인들이 처형되자
- "조선은 부패한 유생의 소굴로서 위로는 뜻이 크고 과단성 있는 인물이 없고, 국민은 노예의 환경에서 살고 있다."
- "조선은 상하 모두가 문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학자는 있지만 다만 중국의 문자만 알뿐 세계 정세는 모르고 있다. 그 나라의 질을 평가한다면 글자를 아는 야만국이라 하겠다."
- "조선인들은 최근 문명의 기본적인 관념을 모른다. 무식한 국민들과 유교 사상에 배불러서 부패한 나라이다"
- "인생은 연극과 같다. 훌륭한 배우가 걸인도 되고 삼류배우가 대감이 될 수 도 있다. 어쨌든 지나치게 인생을 거북하게 생각을 하지 말고 솔직하게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하라.[6]"
- "조선은 요마악귀의 지옥국이다"
- 갑신정변 실패 이후 개화파 정치인들과 그 일족들이 처참하게 처형되자
- "조선인은 완고하고 편협하며, 사리에 어두우며 거만하다"
- "조선의 사절이 중국인들과 함께 미국에 가는것은 거지와 천민이 함께 손잡고 가는 것과 같다"
- "조선은 하루라도 빨리 멸망하는 쪽이 하늘의 뜻에 부합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조선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조선의 멸망은 축하할 일이다"
- 갑신정변 실패 이후 개화파 정치인들이 처형되자
각주
[편집]- ↑ 근대 일본의 스승이라는 후쿠자와 유키치 ‘계몽가’ 탈 쓴 침략 원흉
- ↑ 2.0 2.1 2.2 2.3 2.4 [자서전 읽기] (4)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경향신문 2008.08.15
- ↑ 3.0 3.1 3.2 3.3 3.4 "조선·중국인은 소와 말, 돼지와 개와 같다" 충북일보 2011.11.27
- ↑ [특별기획기고 제1화] ‘한국 때리라’, ‘한국 망할때까지’, 일 우익지들 막말욕질
- ↑ 후쿠자와 유기치의 7訓
- ↑ 가족 연극 ‘곰팡이’를 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