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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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는 러시아 제국의 소설가, 극작가, 의사이다. 러시아 문학 황금 시대의 마지막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평가받고 있다. 체호프는 단편 소설과 희곡에서 길이 남을 작품들을 만들었으며, 그의 저작들은 21세기에도 전세계인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고전이 되었다.
단편 소설
[편집]안톤 체호프. 박현섭 역. (2024).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ISBN 9791141600068
《굴》(1884년)
[편집]- 그 비 내리는 가을 황혼녘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애를 쓸 것도 없다. 아버지와 함께 인파가 북적거리는 모스크바의 거리에 서 있던 나는 어떤 이상한 병적 상태에 점차 빠져들어가는 걸 느낀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9
- 우리 맞은 편에는 '주점'이라는 푸른색 간판이 걸린 커다란 삼층 건물이 있다. 내 머리는 힘없이 기우뚱하게 젖혀져 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 주점의 불 켜진 창문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다. 창문들 너머로 사람들 모습이 어른거린다. 오르간의 오른쪽 부분과 두 점의 삭판화와 천장에 매달린 램프들이 보인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0
- 나는 단번에 이 미지의 바다 생물을 떠올려본다. 그것은 필경 물고기와 바닷가재의 중간쯤 되는 놈이리라. 바다 생물이니까 향긋한 통후추와 월계수 잎을 넣어서 생선 수프를 끓이면 틀림없이 아주 뜨끈하고 맛있을 것이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1
- 그래, 굴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였군! 나는 개구리를 닮은 생물을 상상한다. 개구리 한 마리가 조개껍질 속에 앉아 번들거리는 커다란 눈으로 바깥을 바라보며 징그러운 주둥이를 움찔거린다. 나는 조개껍질 속에 든 이 생물을 시장에서 가져오는 광경을 떠올린다. 집게발과 번들거리는 눈, 미끄덩거리는 피부......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12~13
- 아침이 돼서야 나는 잠이 든다. 그리고 꿈속에서 집게발이 달린 개구리가 조개껍질 속에 앉아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는 것을 본다. 한낮에 목이 타서 잠을 깬 나는 눈으로 아버지를 찾는다. 그는 아직까지도 방안을 돌아다니며 뭐라 손짓을 하고 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5
《아뉴타》(1886년)
[편집]- 복도의 시계는 갈라진 소리로 오후 두시 종을 쳤지만 방안은 아직도 어질러진 채였다. 구겨진 이불,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진 베개와 책들, 옷, 구정물이 가득 담긴 커다랗고 지저분한 대야, 그 위를 떠다니는 담배꽁초들, 바닥에 쌓인 먼지—모든 것이 마치 한꺼번에 내던져서 일부러 뒤섞어놓은 듯 엉망진창이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0
- 의학생은 다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며 암기를 시작했다. 아뉴타는 마치 가슴에 까만 줄무늬 문신을 한 것 같은 모습으로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앉아서 생각했다. 그녀는 평소에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항상 말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기만 할 뿐......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1
《반카》(1886년)
[편집]- 세 달 전 구두장이 알랴힌에게 견습공으로 보내진 아홉 살 소년 반카 주코프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는 주인 내외와 다른 견습공들이 새벽 예배를 보러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인집 벽장에서 잉크병과 녹슨 촉이 달린 펜을 꺼냈다. 그리고 구겨진 종이를 펼쳐놓고 편지 쓸 준비를 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9
- '저는 어제 매를 맞았어요. 주인이 제 머리채를 끌고 마당으로 나가더니 가죽끈으로 저를 마구 때렸어요. 주인집 아기를 요람에 눕히고 흔들어 재우다가 깜박 잠이 들었거든요. 지난주에는 여주인이 저 보고 청어를 손질하라고 했는데 제가 꼬리 쪽부터 손질하니까, 그걸 집어들더니 청어 대가리로 제 얼굴을 찔러댔어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31
- '사랑하는 할아버지, 제겐 아무 희망이 없어요. 언제까지라도 무릎 꿇고 기도드릴게요. 제발 저를 여기서 데려가주세요. 이러다간 죽을 것 같아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32
《6호실》(1892년)
[편집]- 병원 앞마당에 우엉이며 쐐기풀이며 야생대마의 무성한 수풀로 둘러싸인 작은 별관이 서 있다. 지붕은 녹슬어 불그죽죽하고, 굴뚝은 반쯤 허물어졌으며, 잡초로 뒤덮인 채 썩어가는 현관 계단에는 희미한 회칠 흔적만 남아 있다. 건물 전면은 병원 본관 쪽을 향해 있고 후면은 들판에 접해 있는데, 그 사이를 촘촘하게 못이 박힌 회색 병원 담장이 가로지르고 있다. 삐죽삐죽 위로 솟아 있는 못들과 담장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별관의 생김새 자체가 딱 병원이나 감옥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음산하고 불길한 형상이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51
- 첫번째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가보자. 벽과 페치카 주변에 병원의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매트리스, 너덜너덜해진 환자복과 바지와 푸른 줄무늬 셔츠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해진 신발들. 이런 온갖 넝마들이 뒤죽박죽 엉킨 채 한 무더기로 썩어가면서 숨이 막힐 듯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51~52
- 병원의 침대들은 바닥에 나사로 고정되어 있다. 그 위에 파란 환자복을 입고 옛날식으로 나이트캡을 쓴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 이들이 바로 정신병자들이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52~53
- 여느 날 아침과 마찬가지로 그의 기분은 우울했다. 어느 골목에서 그는 쇠고랑을 찬 두 죄수와 마주쳤다. 총을 든 네 명의 호송병이 두 죄수를 데려가고 있었다. 이반 드미트리치는 예전에도 길에서 죄수들을 본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그에게 동정심과 거북한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만남은 그에게 특별하고도 묘한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불현듯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쇠고랑을 차고 진창길을 따라 감옥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59
- "감옥과 정신병원이 일단 존재하게 되었으면 누군가는 거기 갇혀 있어야 하는 겁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제가, 제가 아니라면 어떤 제삼자겠지요. 두고 봅시다, 언젠가 먼 미래에 감옥과 정신병원이 없어질 날이 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창문의 쇠창살도, 이런 환자복도 없어지겠지요. 이르건 늦건 결국엔 그런 시대가 올 겁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88
- "어디로도 벗어날 곳이 없어요. 우리는 나약합니다, 친구...... 저는 속세에 초연한 채 원기 왕성하게 세상의 이치를 탐구했어요. 하지만 삶이 저에게 그 거친 손길을 댄 순간 영혼이 무너져버렸습니다...... 탈진도 했어요...... 나약하고 시시한 인간들입니다, 우리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129~130
《로트실트의 바이올린》(1894년)
[편집]- 그곳은 시골 마을보다도 못한 작은 도시였다. 주민들 대다수가 노인네들인데도 죽는 사람이 좀처럼 없어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병원에서도, 감옥에서도 관을 주문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업 환경이 형편없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37
《상자 속의 사나이》(1898년)
[편집]- "그런데 우리가 답답하고 비좁은 도시에 살면서 하잘것없는 서류를 작성하고 카드놀이를 하는 것, 이건 상자 속 삶이 아닐까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85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1899년)
[편집]- 해변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는 얘기가 돌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라고 했다. 얄타에서 이미 두 주일을 보낸 터라 이곳에 심드렁해진 드미트리 드미트로비치 구로프 또한 새로운 인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베르네 식당의 정자에 앉아 있던 구로프는 크지 않은 키에 베레모를 쓴 젊은 금발 여인이 해변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여인의 뒤로는 하얀 스피츠 한 마리가 따라가고 있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49
희곡
[편집]안톤 체호프. 김규종 옮김. (2010). 《체호프 희곡 전집》. 시공사. ISBN 9788952760074
《고니의 노래》(1887년)
[편집]- 노년이라...... 아무리 속이고, 아무리 허장성세를 부리거나 바보인 척해도 이미 인생은 다 지나가버렸어...... 이미 68년이 사라진 거야. 잘 가시오! 돌이킬 수 없어...... 이미 거의 다 마셨고, 바닥에 남은 것도 거의 없어...... 찌꺼기만 조금 남았어...... 그래...... 일이 그렇게 된 거야, 바슈샤......
- 《체호프 희곡 전집》. 시공사. p.46. 〈고니의 노래〉
- 스베틀로비도프 나한텐 아무도 없어, 니키투쉬카. 친척도, 마누라도, 자식도 없어...... 들판의 바람처럼 혼자라니까...... 내가 죽어도 누구 하나 기억하지 않을 거야...... 혼자라는 게 무서워...... 덥혀주고 달래줄 사람 하나 없고, 술 취한 나를 침대로 누일 사람 하나 없어...... 난 누구의 사람일까? 누구한테 내가 필요하지? 누가 날 사랑하느냐고? 어느 누구도 날 사랑하지 않아, 니키투쉬카!
- 《체호프 희곡 전집》. 시공사. p.48. 〈고니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