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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자존심은 죄다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독자 본위로 써 달라.<ref>[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5110870350 <nowiki>[</nowiki>만물상<nowiki>]</nowiki> 신문 연재소설] 조선일보</ref>"
* "작가의 자존심은 죄다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독자 본위로 써 달라.<ref>[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5110870350 <nowiki>[</nowiki>만물상<nowiki>]</nowiki> 신문 연재소설] 조선일보</ref>"
: ''작가 [[김동인]]이 동아일보에 ‘젊은 그들’을 쓸 때''
: ''작가 [[김동인]]이 동아일보에 ‘젊은 그들’을 쓸 때''

* "일종의 극적 광경이라고나 할까. 황국을 위해 전장에 나가 죽자는 생각이 모두의 얼굴에 드러났더군요.<ref name="dcmmi">[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03/2007030300046.html “화랑 사상 지금 부활해도 좋을듯…”]</ref>"
: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 ‘조선화보’(1944년 1월호)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사회로 진행된 육당과 춘원의 대담 중에서''


* "보통 사람이란 자신보다 만만한 자에게는 한없이 잔인하고 비열해지는 인간이 보통 사람이다."
* "보통 사람이란 자신보다 만만한 자에게는 한없이 잔인하고 비열해지는 인간이 보통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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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년에 조선에 유행되는 가요는…'부어라 먹자 두들겨라'식이 아니면 주색의 방종한 향락을, 검열관이 허하는 한에서 고취하는가 십흔 것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5/2012020501187.html <nowiki>[</nowiki>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nowiki>]</nowiki> <nowiki>[</nowiki>10<nowiki>]</nowiki> 축음기와 레코드가 몰고 온 '유행가 범람시대'] 조선일보 2012.02.06</ref>"
* "근년에 조선에 유행되는 가요는…'부어라 먹자 두들겨라'식이 아니면 주색의 방종한 향락을, 검열관이 허하는 한에서 고취하는가 십흔 것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5/2012020501187.html <nowiki>[</nowiki>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nowiki>]</nowiki> <nowiki>[</nowiki>10<nowiki>]</nowiki> 축음기와 레코드가 몰고 온 '유행가 범람시대'] 조선일보 2012.02.06</ref>"

* "저 ‘화랑’의 사상이란 오늘날 막 바로 부활시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ref name="dcmmi"/>"
: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 ‘조선화보’(1944년 1월호)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사회로 진행된 육당과 춘원의 대담 중에서''


* "이렇게 혼자 건넌방에 앉아서 당신께 편지를 쓰는 것이 나의 유일한 행복이외다. ...(중략)... 이곳은 다 잘 지내니 안심하고 즐겁게 공부하시오. (중략) 공부하는 중이니 저금 아니해도 좋소, 학비가 곧 저금이요.<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21/2011022100735.html 박완서 등 문인의 마음을 훔쳐보다] 조선일보 2011.02.21</ref>"
* "이렇게 혼자 건넌방에 앉아서 당신께 편지를 쓰는 것이 나의 유일한 행복이외다. ...(중략)... 이곳은 다 잘 지내니 안심하고 즐겁게 공부하시오. (중략) 공부하는 중이니 저금 아니해도 좋소, 학비가 곧 저금이요.<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21/2011022100735.html 박완서 등 문인의 마음을 훔쳐보다] 조선일보 2011.02.21</ref>"

2012년 11월 8일 (목) 19:38 판

이광수(李光洙, 1892년 3월 4일 - 1950년 10월 25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소설가이자 작가, 시인, 문학평론가, 페미니즘 운동가, 언론인이었으며, 사상가, 기자, 번역가, 자유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2.8 독립 선언에 참여한 뒤 상하이로 건너가 신한청년당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임정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을 운영하였다.

1922년 질병과 임정의 내분으로 귀국 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언론에 종사하였고 민족 개조론, 민족적 경륜으로 심한 빞나을 받기도 했다. 그뒤 수양동맹회수양동우회, 흥사단 원동지부의 결성을 주관했고,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변절하여 총독부에 협력하였다. 해방 후 1950년 6.25 전쟁때 납북되었다.

어록

  • "그의 느리고 부지런함, 그의 유순함. 그러면서도 일생에 한두 번 노할 때에는 그 우렁찬 영각, 횃불 같은 눈으로 뿔이 꺾이도록 맥진(驀進)함, 그의 침묵함...[1]"
수필 '우덕송(牛德頌)'의 일부
  • '아이들에게도 순순히 끌려가는 모습이 예수와 닮아 거룩해 보이기도 하다.[2]'
  • "조선인은 허위(虛僞)되고, 공상과 공론만 즐겨 나태하고, 서로 신의와 충성심이 없고 술수를 부리며, 임사(매사)에 용기가 없고, 이기적이어서 사회봉사심과 단결력이 없고, 극히 빈궁하고.[3]"
  • "일반 민중이 도덕적 이상이 퇴폐해서 인생의 의무라든가 사업이라든가 하는 높은 희구를 버리고 오직 성욕과 호기심만 따르게 되니, 에로란 성욕적 흥미를 만족시키는 관념군이요 그로란 호기벽을 만족시킬 만한 관념군[4]"
  • "작가의 자존심은 죄다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독자 본위로 써 달라.[5]"
작가 김동인이 동아일보에 ‘젊은 그들’을 쓸 때
  • "일종의 극적 광경이라고나 할까. 황국을 위해 전장에 나가 죽자는 생각이 모두의 얼굴에 드러났더군요.[6]"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 ‘조선화보’(1944년 1월호)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사회로 진행된 육당과 춘원의 대담 중에서
  • "보통 사람이란 자신보다 만만한 자에게는 한없이 잔인하고 비열해지는 인간이 보통 사람이다."
  • "사찰의 개왓장마다 찬 땀이 흐를 일[7]"
  •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사회가 올바르게 운영될수 있을까?"
  • "방 한가운데 놓인 토스트 브레드, 우유, 삶은 달걀, 과일, 냉수, 커피 등속이 다 상등제 기명에 담겨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8]"
소설 에서 1930년대 모던 보이들의 생활상 묘사
  • "근년에 조선에 유행되는 가요는…'부어라 먹자 두들겨라'식이 아니면 주색의 방종한 향락을, 검열관이 허하는 한에서 고취하는가 십흔 것들…[9]"
  • "저 ‘화랑’의 사상이란 오늘날 막 바로 부활시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6]"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 ‘조선화보’(1944년 1월호)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사회로 진행된 육당과 춘원의 대담 중에서
  • "이렇게 혼자 건넌방에 앉아서 당신께 편지를 쓰는 것이 나의 유일한 행복이외다. ...(중략)... 이곳은 다 잘 지내니 안심하고 즐겁게 공부하시오. (중략) 공부하는 중이니 저금 아니해도 좋소, 학비가 곧 저금이요.[10]"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부인에게 보낸 편지
  • "세말이 되면 진고개와 종로에서 장, 단스 같은 것을 일등상으로 걸어놓고 경품부 대매출을 한다. 그때마다 안해는 장이 빠지기를 바라고 물건을 삿다. 그러나 뽑는 것마다 타울수건, 화저까락 따위요, 바라는 장은 아니 빠졌다.[11]"
자개장 당첨을 꿈꾸며 물건을 사들이는 아내 모습을 묘사하면서
  • "(고구마 꽃은) 백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꽃[12]"
  • "세상에 백두산만한 명산도 없지만, 백두산만큼 매몰된 명산도 없습니다. ...(이하 중략)... 무엇보다 그 주인인 조선인에게 가장 심하게 백두산이 대접받지 못함이 가장 애닯습니다. 백두산이란 이름을 모르는 이야 없겠지만 또 백두산이 우리 민족에게 소중한 산인 줄 모르는 이야 없겠지만 한 걸음 나아가 백두산의 국토적 성질, 민족적 관계, 자연 및 인문상 실제적 사정에 대하여 묻는다면 우리가 가진 지식이 너무 작고 부족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하 중략)... 알아야 할 까닭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알고자 하는 노력도 있을 까닭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하 중략)... 그러나 백두산을 우리가 이렇게 알아야 옳으며, 또 이렇게 알아도 그만이리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13]"
1936년 '계명', '백두산' 정상 등반 소감
  •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은 '독립을 포기하는 것'이며 모두 일본국민이 될 것[14]
  •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36년 만에 끝나지 않고 100년 이상 계속될 줄 알았다.[15]"

외부 링크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