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너드 케인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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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결코 열정적인 자유무역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국내 정책이 없는 나라들은 수축 주도 성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고, 이는 보호주의의 반발을 불러오기 십상이라고 보았다. 그는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데는 "신중한 절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그는 결코 열정적인 자유무역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국내 정책이 없는 나라들은 수축 주도 성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고, 이는 보호주의의 반발을 불러오기 십상이라고 보았다. 그는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데는 "신중한 절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로버트 스키델스키, 〈한국어판 서문〉,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2009, p. 19
** 로버트 스키델스키 (Robert Skidelsky), 〈한국어판 서문〉,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2009, p. 19


* 그는 기업의 경영은 불가피하게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믿었다. […] 금융 불안정이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 본래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며, 금융적 혁신 기법들 역시 새로운 규제 조치에 의해 제어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 그는 기업의 경영은 불가피하게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믿었다. […] 금융 불안정이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 본래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며, 금융적 혁신 기법들 역시 새로운 규제 조치에 의해 제어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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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인스는 천재였지만, 경제학은 잘 몰랐다.
* 케인스는 천재였지만, 경제학은 잘 몰랐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Friedrich Hayek)
** 조순,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58516 "현 경제위기, '유효수요 창출'만으론 해결 안돼" ]에 인용됨.
** 조순,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58516 "현 경제위기, '유효수요 창출'만으론 해결 안돼" ]에 인용됨.



2015년 4월 9일 (목) 17:07 판

존 메이너드 케인스 남작(John Maynard Keynes, 1st Baron Keynes of Tilton in the Country of Sussex, CB, 1883년 6월 5일 ~ 1946년 4월 21일)은 영국의 경제학자이다.

어록

  • 장기는 현재 사안에 대해 잘못된 안내를 해준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 But this long run is a misleading guide to current affairs.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 《화폐개혁론》
  • 경제학의 연구는 아주 높은 전문적 자질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적 관점에서는, 철학이나 순수과학처럼 보다 높은 부문과 비교하면, 오히려 쉬운 분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경제학자는, 아니 유능한 경제학자조차도, 대단히 드물다. 쉬운데도 불구하고 뛰어난 학자가 대단히 드문 학문!
    • 《인물평전》
  •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은 그것이 옳을 때에나 틀릴 때에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준보다 더 강력하다. 사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것 말고는 별로 없다. 자신은 그 어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믿는 실무가들도 대개는 이미 죽은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다. 하늘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권좌의 광인들은 몇 년 전에 졸렬한 글을 써댄 어떤 학자로부터 자신의 광기를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사상의 점진적인 침투에 비해 기득이권의 힘이 엄청나게 과장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주명 역)
    •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

케인스에 관한 어록

  • 작금에 많은 사람들이 '케인스의 부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케인스의 부활'은 케인스가 그의 책과 연설문과 실제의 실천에서 보여주었던 그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는 형태는 아닐 것이다. 역사가로서의 스키델스키가 쓴 케인스 전기는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케인스의 경제학'이 케인스의 삶에서 보여준 구체적 형태는 케인스가 살았던 시대의 구체적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케인스의 부활' 보다는 '케인스 정신의 부활'이 필요한 듯이 보인다. 서평을 맺으면서 본 서평자는 번역자가 역자서문의 제목으로 삼은 문장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케인스 혁명은 일어나 본 적이 없다" ― '케인스주의 혁명'은 (실패한 혁명으로) 존재했지만 말이다.
  • 그는 결코 열정적인 자유무역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국내 정책이 없는 나라들은 수축 주도 성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고, 이는 보호주의의 반발을 불러오기 십상이라고 보았다. 그는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데는 "신중한 절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로버트 스키델스키 (Robert Skidelsky), 〈한국어판 서문〉,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2009, p. 19
  • 그는 기업의 경영은 불가피하게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믿었다. […] 금융 불안정이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 본래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며, 금융적 혁신 기법들 역시 새로운 규제 조치에 의해 제어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 로버트 스키델스키, 〈한국어판 서문〉,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2009, p. 20
  • 케인스는 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는 고정환율을 선호했다. 그는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통화 전쟁을 경험했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각국의 통화가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 아마도 케인스가 살아 있었더라면 저평가된 통화를 수단으로 수출 주도 성장을 촉진하려고 외환 보유고를 지속적으로 비축하는 정책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을 것이다.
    • 로버트 스키델스키, 〈한국어판 서문〉,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2009, p. 20
  • 철학에서 케인스는 직관주의자였다. 그는, 경험적인 자료가 없더라도, 우리에게는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옳고 그른 행동에 대한 직접적 혹은 선험적 지식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공리주의자라기보다는 칸트에 가까웠다.
    • 로버트 스키델스키, 〈한국어판 서문〉,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2009, p. 21
  • 한 인간으로서 케인스는 미학자와 경영자의 매혹적인 조합이다. 그의 취향과 선호는 미학적이었으며 그가 쓴 경제 저술들에는 시적 자질이 번득였다. 그러나 이런 번득이는 자질이 위기에 처한 사회질서를 보호해야 한다는 엄격한 책무를 방기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는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라도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로버트 스키델스키, 〈한국어판 서문〉,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2009, p. 21
  • 실천적인 맥락에서도 필자는 케인스-민스키가 제안하는 공공 정책이 한국 사회 현실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신희영, 〈옮긴이의 말〉, 하이먼 민스키, 《케인스 혁명 다시 읽기》
  • 하늘이 내린 그의 재능은 흉내낼 수 없지만, 그의 실천적 지성의 모습과 투철한 공인정신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 경제학에서 거인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평범한 사람 중 조금 더 똑똑한 사람이 흐름을 주도하는 시대를 맞게 되었다. 경제학 연구의 성격이 날로 전문화되어 가다 보니 거인의 풍모를 가진 경제학자가 나오려야 나오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케인즈는 20세기 경제학계의 마지막 거인으로 뭇사람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이 다재다능하고 멋진 경제학자를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
    • 이준구·이창용, 《경제학원론》(제4판), p.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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