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위키인용집 - 인용 모음집.
이동: 둘러보기, 검색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년 9월 9일- 1910년 11월 20일)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러시아 문학과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톨스토이는 1828년 9월 9일에 남러시아 툴라 근처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 났다. 명문 백작가의 4남으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다. 학력은 카잔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다가 중퇴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대학교 교육 방식에 실망을 느껴서라고 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인 톨스토이의 주요작품으로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장편 소설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바보 이반》 등의 중편 소설이 잘 알려져 있다.

출처 있음[편집]

영혼의 구도자[편집]

  • 사랑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인간과 신을 맺어주기 때문에.
  • 만일 사람이 나쁜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신앙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나라의 국민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즉 어떤 국민이 나쁜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국민이 신앙을 잃었기 때문임에 다름없다.
  • 우리는 이성에 의하여 신앙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성은 남이 주장하는 신앙을 검토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 주변의 모든 자가 믿는 것을 유독 자기만 믿지 않는 자가 믿음이 없는 자는 아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생각하여 입밖에 내어 말하는 자야말로 진실로 믿음이 없는 것이다.
  • 소심한 인간의 고통은 자기에 대한 남의 평가가 어떤지 모르는 일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령 어떤 평가든 간에 분명하게만 표현된다면 그 고통은 담박 사라지는 것이다.
  • 자기의 본질적 가치로써 남으로 하여금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할 자신이 없는 인간은 부하와의 접촉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뻐기는 태도를 공연히 겉에 나타냄으로써 남의 비판을 멀리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 불행한 인간은 동정하여 주는 사람의 얼굴을 보기를 즐기며, 자기의 고통을 털어놓고 사랑과 동정의 말을 듣기를 좋아한다.
  • 고통이란 왠지 깊은 동정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고통에 견디는 사람에게 높은 존경을 갖게 하고 자칫하다간 그를 모욕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조차 갖게 한다.
  • 알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인 것이다.
  • 군중이란 설령 좋은 사람만 모인 곳에서라도 동물적인 추악한 면만 나타내고, 인간의 본성적 약점과 잔인성만 보이는 법이다.
  • 상류 사회에 얼굴이 선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게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일종의 자본이다.

명상을 위한 한 마디[편집]

  • 생활이 격변할 때 자기의 행위를 돌이켜 생각해 볼 능력이 있는 인간은 진정 명상적 기분에 젖기가 쉽다. 그리고 그런 때는 거의 과거를 검토하고 미래를 설계하여 보는 것이다.
  • 사람이 적응하지 못할 상황이란 있을 수 없다. 특히 자기 주위의 사람들이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 장엄한 노년이 있다. 추악한 노년이 있다. 불쌍한 노년이 있다. 추악하고 장엄한 노년도 있다.
  •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일, 아니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기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 사람에게 물건을 빌려 주는 일은 마치 산 아래로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과 같고, 빌려 준 물건을 돌려 받는 일은 산꼭대기에 끌어 올리는 것과 같다.
  • 위대하고 진실한 일은 항상 소박하며 근엄하다.
  • 진짜 정신병자란 남의 정신착란의 징조는 보고, 자기의 그것은 못 보는 자를 말함에 틀림없다.
  • 인간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나쁜 일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 자기의 생활을 높여간다. 이 사실만이 남의 생활을 높이는 것이 되며 결국은 남도 자기에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자기를 높인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높이는 것이 되는 것이다.
  • 무엇이 좋고 무엇이 필요한가를 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언동이 아니며, 또 진보도 아니고 자기와 자기의 마음인 것이다.
  • 그러한 자기란 무엇인가? 무한한 것의 일부이다.
  • 어떠한 일이든 거짓에 의하기보다는 진실한 것에 의하는 편이 항상 보다 직선적이며 보다 신속하게 해결된다. 그리고 남에게 하는 거짓말은 문제를 혼란시키고 해결을 멀리할 뿐이다. 그러나 진실한 체 보이며 자기에게 하는 거짓말은 그 인간의 평생을 망치게 한다.
  • 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편이 더욱 나쁜 일이다. 이러한 거짓말이 특히 해로운 것은 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에는 남이 거짓말을 고쳐줄 수 있지마는, 자기에게 하는 경우에는 아무도 고쳐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다.
  • 진정한 힘은 남을 정복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이겨 동물적 본능에 영혼을 지배당하지 않는 자에게 있다.
  • 자기를 칭찬하지 말라. 남을 꾸중하지 말라. 남을 꾸중하는 일은 항상 바르지 않다. 왜냐하면 비난받는 자의 마음속에 일어난 일, 또는 일어나고 있는 일은 결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 자아를 버린 인간은 강하다. 왜냐하면 자아가 그의 내부에 있는 하나님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자아를 내버리자마자 그의 내부에서는 이젠 그가 아니라 하나님이 활동하는 것이다.
  • 모든 인간의 생활에서 중요한 일은 보다 선량하고 보다 훌륭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다. 하지만 이미 자신을 훌륭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때 어제보다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보냐.
  • 자신에 만족하는 인간은 항상 남에게 불만이다. 늘 자기에게 불만인 자는 항상 남에게 만족한다.
  • 좋은 인간이란 자기의 죄는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자기의 선행을 이내 잊는 자이다. 나쁜 인간이란 그 반대로 자기의 선행은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죄는 곧 잊는 자이다.
  • 선량하며 총명한 인간은 자기보다 남을 더 훌륭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인간과 구별하기가 쉬운 것이다.
  • 욕을 먹든가 모함을 받으면 기뻐하라. 칭찬을 받으면 조심하라.
  • 남의 허위를 발견하여 그것을 추궁하는 일은 통쾌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허위 속에 묻혀 있음을, 자기를 추궁하는 편이 몇 배나 더 통쾌하다.

행복한 결혼과 가정의 평안[편집]

  • 여자란 남자의 사업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다. 여자를 사랑하면서 무엇을 하려 함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런 지장 없이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꼭 하나 있다. 그것은 결혼이다.
  • 여자는 남자보다 물질적이다. 우리들 남자는 사랑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만들어 내지만 여자는 늘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 온갖 여성 문제는 참된 노동의 법칙을 어긴 남자와의 사이에서만 발생했고 또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 성실한 결혼 생활을 영위함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보다 좋은 일은 아주 결혼을 하지 않는 일이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좀체 없다. 그러나 그런 인간은 행복하다.
  •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도 결혼을 하는 인간의 행위는 걸리지도 않고 쓰러지는 사람의 행위와 같다. 무엇에 걸려 넘어진다면 할 수 없다. 하지만 걸리지도 않는데 왜 일부러 넘어진단 말인가.
  •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거의 비슷한데 불행한 가정은 거의가 각각 다른 불행을 짊어지고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편집]

  • 자유가 없는 인간은 생명을 잃은 인간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 사람들은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이 끌고 다닐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결박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를 묶은 그 밧줄 을 아무에게나 건네주고 나서 자기들의 자유가 빼앗겼음을 알고 놀란다.
  •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아무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우며, 남의 의지 아닌 자기의 의지로써 사는 일이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은 영혼을 위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영혼을 위해 살려면 육체의 욕망을 눌러야만 한다.
  • 욕망이 작으면 작을수록 인생은 행복하다. 이 말은 낡았지만 결코 모든 사람이 다 안다고는 할 수 없는 진리이다.
  • 평안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으면,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을 멀리하라.
  • 굶어 죽는 자는 거의 없다. 맛있는 것을 너무나 많이 먹고 일하지 않기 때문에 병들어 죽는 자가 훨씬 더 많다.
  •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지 않으면 안 된다.
  • 사람이 훌륭하게 살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이성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은 이성이다. 이 이성을 담배나 술이나 아편으로 죽이는 데 쾌락을 찾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사람들이 나쁜 생활을 하려고 함에 있어서 이성을 죽이지 않으면 그게 나쁜 생활이라고 이성이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인간이 불필요한 것을 잔뜩 안고 있다면 다른 많은 인간들이 필요한데도 부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육체에 꼭맞는 옷을 입기보다는 양심에 꼭맞는 옷을 입는 것이 좋은 것이다.

원만한 인간 관계[편집]

  • 육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영혼을 거칠게 내버려야 된다.
  • 인간은 자기를 높이 평가할수록 남에 대하여 미움을 가지기 쉽다. 인간은 겸허하면 겸허할수록 선량해지며 화를 내는 일도 적어진다.
  • 미움은 항상 무력함에서 발생한다.
  • 나의 주위에는 악인이 득실거린다고 당신은 말한다. 만일 당신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도 굉장한 악인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 사람은 때때로 남의 결점을 파헤침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돋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결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은 총명하고 선량하면 할수록 남의 좋은 점을 발견한다. 그러나 어리석고 짓궂으면 그럴수록 남의 결점을 찾는다.
  • 남과의 교섭이 자기에게 있어서나 남에게 있어서나 괴로운 것이 아니게 하기 위해서는, 그 인간에 대해서 사랑을 느끼지 않으면 그와는 교섭을 가지지 않을 일이다.
  • 조금 화가 나면 행동을 하기 전에, 혹은 말을 하기 전에 열을 세어라. 몹시 화가 났을 때는 백을 세어라. 화가 날 때마다 이 사실을 상기하면 숫자를 셀 필요조차 없어진다.
  • 깊은 강물은 돌을 집어던져도 흐려지지 않는다. 모욕을 받고 이내 발칵하는 인간은 강도 아닌 조그만 웅덩이에 불과하다.
  • 죄를 범하는 일은 인간이 하는 일이며, 자기의 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악마의 일이다.
  • 회개한다는 것은 자기의 죄를 알고 그것과 싸울 것을 각오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에 회개함이 좋다. 램프는 불이 꺼지기 전에 기름을 부어야 하는 것이다.
  • 믿음에 의하여, 혹은 남의 용서를 받음으로써 죄를 벗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무엇으로도 죄를 벗을 수는 없다. 다만 자기의 죄를 알고 그 죄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 자기는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자신에게 말하는 자야말로 불쌍한 자이다.
  •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의 죄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대신 그 죄에서 자기가 해방되어 감을 아는 일은 커다란 기쁨이다. 밤이 없다면 우리는 햇볕이 주는 기쁨을 모를 것이다. 죄가 없다면 인간은 정의의 기쁨을 모를 것이다.
  • 남에 대한 죄와 자기에 대한 죄가 있다. 남에 대한 죄는 남의 내부에 있는 하나님의 영혼을 존경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자기에 대한 죄는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혼을 존경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시간과 인간의 미래[편집]

  • 시간이란 없다. 있는 것은 일순간뿐이다. 그리고 그곳, 즉 그 일순간에 우리의 모든 생활이 있다. 그러므로 이 순간에 있어서 우리는 모든 힘을 발휘하여야 한다.
  • 시간은 흐른다고 우리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옳지 않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들이지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강을 보트로 갈 때, 움직이는 것은 강가이며 우리가 탄 보트는 아닌 듯이 생각된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 과거를 기억하고 있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을 우리가 받은것은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한 고찰에 따라 현재의 행위를 보다 올바르게 결정하기 위함에 다름없고, 과거를 슬퍼하거나 미래의 준비를 하기 위함은 결코 아니다.
  • 시간은 우리의 앞과 뒤에 있는 셈이고 우리의 옆에는 없다. 사람은 과거나 미래의 일만 생각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가장 중요한 것, 즉 현재에 있어서의 참생활을 잃어버리게 된다.
  • 내일은 생각하지 않음이 좋다. 그러나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의 방법밖엔 없다. 즉 자기는 오늘 이 시간의, 이 순간의 일을 훌륭하게 다했나 어쨌나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 만일 오늘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결코 그것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이 하여야 할 일을 하였는지 못했는지 따위를 죽음은 생각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은 누구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에 있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가 지금 하는 일인 것이다.
  • 우리가 한 행위의 결과는 모두 우리에겐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위의 결과는 모두 무한한 세계와 시간 속에 무한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가 가져다 주는 것[편집]

  • 자기의 활동의 결과를 모두 안다면, 그 활동은 시시한 것임을 알리라.
  • 어떤 일에 있어서나 성공을 결정하는 첫째이며 유일한 조건은 참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일의 가장 큰 장애가 된 것은, 특히 이제껏 나에게 최대의 손해를 준 것은 공연한 참견이었다. 이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
  • 좋은 일은 항상 불의에 닥쳐오는 것으로 노력하면 할수록 도리어 멀어지는 것이다.
  • 인간의 행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의 의지에 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 인간은 하여야 할 일을 안 해서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활을 타락시킨다. 그러므로 좋은 생활을 하려고 함에 있어 사람이 경계하여야 할 일은 하여서는 안 될 일을 않도록 하는 일이다.
  • 인간은 자기가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을 때 비로소 자기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하여선 안 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하여야만 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설령 무엇 때문에 자기가 그 일을 하여야 하는지는 모르더라도.
  • 문-급할 때는 무엇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가. 답-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 의기소침했을 때는 병자를 거들듯 자신을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 곤란한 상황이라고 생각할수록 행동을 일으킬 필요는 없게 된다. 우리는 항상 행동을 일으킴으로써 그러지 않아도 좋아지려는 일을 망쳐 놓고 만다.
  • 일에 쫓겨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자주 천진한 오락을 거절한다. 그런데 소박하고 유쾌한 게임을 하는 편이 어지간한 일보다 필요하며 중요하다는 일은 덮어 놓고라도, 바쁜 사람들이 오락을 가까이하지 않는 그 일이란 대개는 않는 편이 나은 시시한 일인 것이다.
  • 신앙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신앙의 설명에 불과하며, 사회적·국가적 생활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신앙 그것인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얹힌 정도는 이제 올 데까지 와 있어서 대다수의 문명인은 경관에 대하는 신앙만을 가지고 생활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 국가가 국민에게 매력을 잃은 것은 위정자들이 자기들은 국민의 노동을 이용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 나는 하나님과 인간의 계율을 차례로 깨뜨리는 따위의 법률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또 인정할 수도 없다.
  • 권력의 토대는 육체적 폭력이다.
  • 말하기도 두려운 일이지만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인간끼리의 집단적 폭력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
  • 물레방아는 가루를 잘 빻기 위해서 필요하다. 인생은 삶을 훌륭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다.

행복에의 초대[편집]

  • 모든 사람은 내 몸의 행복만을 바라고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을 사람들이 가지지 않는다면, 그 인간은 자기가 산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사람은 나의 행복을 비는 기분이 없이는 인생을 생각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행복을 획득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 인간의 생활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자리에 들기까지의 일련의 행위이다. 사람은 날마다 자기에게 가능한 무수한 행위 속에서 자기가 하여야 할 행위를 끊임없이 선택하여야 한다.
  • 만일 사람이 남이 사는 것을 모르고, 쾌락이 만족을 주는 일이 없음을 모르고, 또 이윽고는 자기가 죽는 일이 있음을 모르고 생존한다면 그는 자기가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 동물적 개인의 행복을 버리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삶의 법칙이다.
  • 개인의 행복을 버리는 일은 미덕도 아니고, 의지도 아니며, 인간의 삶의 피할 수 없는 일이다.
  • 동물에게 있어서는 자기 하나의 행복을 목적하지 않는 행동, 즉 자기 자신의 행복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행동은 말할 것도 없이 사는 것을 부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전혀 이것과는 반대다. 자기 하나의 행복만을 얻으려는 인간의 행동은 인간의 삶에 대한 완전한 부정이다.
  •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우리가 자기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의 사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 기뻐하라! 기뻐하라! 인생의 사업, 인생의 사명은 기쁨이다. 하늘을 보고, 태양을 보고, 별을 보고, 풀을 보고, 나무를 보고, 동물을 보고, 인간을 보고 기뻐하라. 그 기쁨이 어느 무엇에 의해서도 깨지지 않도록 감시하라. 이 기쁨이 깨어지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신이 어디서든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잘못을 찾아내어 바로잡아야 한다.

삶과 죽음의 의미[편집]

  • 자기만을 사랑하고 남과 싸우면 싸울수록 더욱 남은 전의를 굳히고 칼날을 보일 것이다.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은 심해질 것이다. 죽음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죽음은 더 무서운 것이 될 것이다.
  • 죽음은 공포가 아니며, 거짓 삶의 공포라는 가장 좋은 증거는 때때로 사람이 죽음의 공포 때문에 자살하는 사실이다.
  •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죽음이 공허와 암흑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공허와 암흑을 보는 것은 그들의 삶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 육체의 죽음은 공간적 육체와 시간적 의식을 없애는 것이지만, 그러나 삶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시체와 영혼 존재와의 사이에 성립되는 특수한 관계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 죽음의 공포는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된 관념에 의하여 국한된 삶의 한 작은 부분을 인생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 우리에게는 사람이 죽을 때가 아닌데 죽는 듯이 생각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이 죽는 것은 그것이 그의 행복에 있어 필요할 때에 한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것이 그의 행복에 필요한 때에 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죽음과 고통이 재난으로서 사람의 눈에 비치는 것은 사람이 육체적·동물적 존재의 법칙을 삶의 법칙과 혼동할 때뿐이다.
  • 삶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 삶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다만 삶의 형식을 바꿀 수 있음에 불과하며 이 세상에서의 삶의 나타남을 중절시킬 수 있음에 불과하다.
  • 산다는 것은 죽는 것과 같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잘 죽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우레 소리가 나는 것은 이미 벼락이 떨어진 것을 말하며, 따라서 벼락에 맞아 죽을 염려는 전혀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레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서워서 벌벌 떤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삶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것이 없어지는 줄로 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으로부터 도망하려고 한다. 어리석은 자가 우레 소리를 듣고, 벼락에 맞아 죽을 염려는 전혀 없는데도 도망쳐 가는 듯이.
  • 죽음,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덮어 쓰고 있는 바깥쪽 껍데기의 변형이다. 바깥 껍데기와 그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환상을 무서워하는 것, 즉 없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과 같다.
  • 죽음을 잃은 생활과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옴을 의식한 생활과는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상태이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하나님의 상태에 가깝다.

진정한 사랑이란[편집]

  • 미래에 있어서의 사랑이란 없다. 한마디로 말해 사랑은 전적으로 현재에 있어서의 활동이다. 현재 사랑을 모르는 인간은 사랑이 없는 자이다.
  • 진실한 사랑은 동물적·개인적 사랑을 버렸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 사랑이란 자기, 즉 동물적 개인보다도 다른 존재를 우선시키는 것을 말한다.
  • 진정한 사랑은 삶 그것이다.
  • 다만 사랑하는 자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돈을 벌어 모으는 인간은 사랑할 줄을 모른다.
  • 사랑은 이성의 귀결이 아니다. 또 일정한 활동의 귀결도 아니다. 그것은 환희에 찬 생명의 활동 그것이다.
  • 아내의 사랑, 아들의 사랑, 그것은 인간의 사랑은 아니다. 동물이라도 그것과 같이, 아니 그보다 더 강하게 사랑을 한다. 인간의 사랑, 그것은 하나님의 자손으로서의, 따라서 형제로서 인간에 대한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 자기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자기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삶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자기의 무엇을 사랑하는가,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가, 자기의 육체를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다.
  • 사랑하는 것만큼 자신을 강제하는 일은 없다. 사랑을 방해하는 것을 떨쳐 버릴 뿐이다. 그리고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란 동물적인 '자기'에 대한 사랑이다.
  • 사랑은 완전한 것밖엔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랑을 함에는 불완전한 것을 완전한 것으로 생각하든가, 혹은 완전한 것, 즉 하나님을 사랑하든가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 만일 불완전한 것을 완전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잘못은 조만간 판명될 것이고 사랑은 그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즉 완전한 것에 대한 사랑은 그칠 날이 없는 것이다.
  •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을 배신하는 행동이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다.
  • 육체적 행복, 즉 모든 쾌락은 우리가 그것을 남으로부터 빼앗음으로써 비로소 얻어진다. 그러나 영적 행복, 즉 사랑의 행복은 우리가 남의 행복을 드높여 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 어떤 선행이 무슨 목적이 있어 행하여진다면, 그것은 벌써 선행이 아니다. 목적이 전혀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편집]

  • 하나님이란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고 다른 모든 신앙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근원의 근원이며, 모든 원인의 원인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이며 이성의 극한이다.
  • 하나님이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같은 뜻의 말이다. 하나님이란 삶 바로 그것이다.
  •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은, 나는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과 같다.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만일 당신도 모든 사람의 행복을 바란다면, 즉 당신이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면 당신의 속에는 하나님이 살고 있는 것이다.
  • 나는 나를 보내고 받아들이는 이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 인간은 무엇인가를 사랑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진실로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악한 것을 전혀 포함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러니까 악한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존재하여야만 한다. 이렇듯 악한 것을 전혀 가지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즉 하나님이다.
  • 하나님에 대해서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인식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사람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을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로 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것만이, 즉 우리가 '나'――즉 영혼――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 가끔 생각하는 일인데, 영혼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보다는 육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일이 나에게는 더 어렵다. 육체가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육체란 결국은 남의 것이고 영혼만이 자기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이 자기 속에 영혼을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그가 영혼을 가지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아직은 자기의 영혼을 의식하기까지는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함에 불과하다.
  • 양심이란 모든 사람 속에 살고 있는 영적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양심은 그러한 인식인 경우에만 인간 생활의 충실한 인도자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영적 존재에 대한 인식을 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이 나쁘다든가 좋다든가 하는 생각을 양심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 영혼은 유리이다. 하나님은 그 유리를 통과하는 빛이다.
  • 멸망하지 않은 영혼에 있어서는 그 영혼과 똑같이 멸망하지 않는 사업이 필요하다. 영혼에 부과된 그 사업은 자기와 세계의 한없는 완성이다.
  • 인간은 모든 사람 속에 자신을 발견할 때, 비로소 자기의 삶을 파악하는 것이다.
  • 아이는 어른보다 총명하다. 아이는 인간에게 신분이나 지위가 있음을 모른다. 아이는 자기 안에 사는 영혼과 똑같은 영혼이 누구에게나 있음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 만일 인간이 모든 이웃에, 세계의 모든 인간과 자기를 묶는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는 반쯤 자는 상태로 살고 있는 셈이다. 모든 이웃에서 자기와 하나님을 보는 자만이 눈을 뜨고 진실로 사는 자이다.
  • 인간이 동물보다 우수한 것은 인간이 동물을 놀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고 인간이 동물을 불쌍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을 불쌍하게 생각함은 자기 속에 사는 영혼과 같은 영혼이 동물 속에도 살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 설령 그 인간이 아무리 부도덕적이고 불공평하고 우둔하고 불유쾌한 상대라 할지라도 만일 그를 존경하지 않게 되면 당신은 그 때문에 당신과 그와의 맺음뿐만 아니라, 영적 세계와의 관계를 끊어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두는 것이 좋다.

종교와 신앙의 가치[편집]

  • 신앙의 사업이란 신앙을 밑받침한 생활에 다름없다. 생활만이 무엇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것으로 생활은 생활에 의해서만 인식되는 하나님 외에 무엇에도 종속될 수는 없다.
  • 더러움 없는 진실한 삶은 신앙 속에, 즉 광기 속에 있다.
  • 진실한 종교란 인간의 모든 법 위에 있는 법률, 즉 세계의 모든 인간에 대해서 하나밖에 없는 법을 아는 데 있다.
  • 자기의 신앙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벌써 신앙이 아니다. 신앙이란 어쩌면 자기는 거짓을 믿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하는 따위의 생각이 절대 떠오르지 않는 경우에만 신앙인 것이다.
  • 신앙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남의 말을 그대로 믿는 신앙. 이것은 다른 인간에 대한 신앙이며, 이러한 신앙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이 세상에 낳게 한 자에게 자기가 소속되어 있음을 믿는 일.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며, 이러한 신앙은 모든 인간에게 하나밖에 없다.
  • 인생의 진정한 법은 극히 간단 명료하며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그 법을 모른다는 구실로써 자기의 추악한 생활을 변호할 수는 없다. 만일 사람들이 인생의 진실한 법에 반대되는 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그들로서는 이성을 버릴 수밖 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사람이 진정한 신앙을 몸에 붙였을 때 그의 몸에는 어두운 방에 불을 켰을 때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즉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마음속이 밝아지는 것이다.
  • 선과 악의 영원한 상극에 얽히는 인간의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선과 악의 상극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가. 또 어떻게 살 것인가.――신앙의 문제란 언제나 이들 문제에 대한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가르침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대신 너는 왜 악인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다. 즉 네가 악인인 것은 아담의 원죄 때문에 너도 그 죄를 이어받아 죄 속에 태어났고 항상 죄 속에 생활했고 죄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 '너희는 모두 죄에 차 있다. 너희 속에 죄 없는 자는 하나도 없다. 어린애조차도 죄에 차 있다. 악에의 지향은 너희의 의지에 의함이 아니라 유전에 의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힘으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 구원받는 길은 또 하나, 항상 기도하며 세례를 받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는 길이다.' 이런 가르침보다 더 부도덕한 가르침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교회의 국가적·사회적 역할[편집]

  • 교회의 교의는 조그만 일탈에서 발생한 것일지라도 지금은 그리스도교의 죄악의 적이 되어 있으며, 성직자들은 다른 무엇에봉사하더라도 예수의 가르침에만은 봉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있으므로.
  • 그리스도를 짓밟고 발전한 교회의 교의가 펼치는 '그리스도교'가 아주 없었다면 지금 그리스도교 교도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즉 생활의 행복에 대해서의 합리적 가르침에 지금보다 훨씬 가까운 관계에 이르렀을 것이다.
  •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입으로는 승인하면서 실생활상으로는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 지난날엔 교회가 이 세상 사람의 정신 생활을 지도한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약속하고는 그 대신 생활을 위한 인류의 투쟁에서 발을 빼버렸다. 그리고 교회가 그러한 행위를 하자마자 교회는 자기의 사명을 배반한 결과가 되었고 사람들은 교회에 등을 돌려 버렸다. 교회가 멸망한 것은 교회 자신의 타락 때문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시대의 권력의 비호를 받은 성직자들이 노동의 계율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락과 사치에 대한 그들의 권리가 교회의 타락을 가져온 것이다. 이 권리를 받은 뒤부터 그들은 자기들이 봉사하는 일을 맡은 사람임을 잊고 교회의 일만 걱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직자들은 타락과 방종에 몸을 맡겨 버린 것이다.
  • 전도자들이 참으며 고통을 받는 사이에는 교회가 존재했다. 그들이 살이 찌기 시작하자 그들의 전도 활동은 끝났다.
  • 예수는 전도자라 칭하고 사제가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든가, 또 성찬식이라면서 빵과 포도주를 끄집어내는 등 마법과도 같은 일을 함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금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전도자라고 부르는 일조차 지극히 분명히 금지하고 있다. 또 예수는 교회에서의 기도를 금지했고 각자가 고독한 곳에서 기도하도록 명령했다. 다시 예수는 교회 자체도 금지하고, 자기는 교회를 깨뜨리기 위해서 온 자이며 기도는 교회에서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진심을 다하여 하여야 한다고 설파했다. 특히 예수는 지금 여기서 행하여지고 있는 것 같은 일, 즉 남을 재판하고 감금하고 학대하고 모욕하고 벌하는 등의 일을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남에 대한 일체의 폭력을 금지했고, 자기는 묶여 있는 사람을 해방하러 왔다고 말했다.
  • 교회로서의 교회와 그리스도교와의 사이에는 이름이 같을 뿐 다른 아무런 같은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완전히 대립하고 적대한 두 개의 원리이다. 즉 전자는 거만, 폭력, 자기 긍정, 고착, 죽음 등이며 후자는 겸허, 참회, 순종, 운동, 삶인 것이다.
  • 진정한 그리스도교는 폭력에 의한 권력을 부정하고, 계급적 차별, 부의 축적, 형벌, 전쟁 등 정부와 지배 계급에 유리한 입장을 주는 것을 모조리 부정하고 있다. 이 사실을 정부와 지배 계급은 알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의 입장을 지지하여 주는 종교만을 지지하는 것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에 의하여 비뚤어지게 된 그리스도교는 정부와 지배 계급에 유리하게끔 진실한 그리스도교를 비뚤어지게 하고 진짜 그리스도교에 이르는 길을 감추어 버린 것이다.
  • 이교도 사회를 이룬 토대는 복수와 폭력이었다. 그것은 그것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들 그리스도교 사회의 토대는 필연적 사랑이며 폭력의 부정이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실제는 폭력이 역시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 칭하면서 설파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아니기 때문이다.
  • 사람은 모두 복음서를 읽으면, 이 가르침에 따르자면 어떤 구실과 같이, 즉 복수 때문이건 나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건 남을 구하기 위해서건 이웃에 대하여 악을 행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따라서 그리스도교도이고 싶으면 폭력에 의해서――즉 이웃에 악을 행함에 의해서――지탱되는 자기의 생활을 바꾸든가, 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요구하는 일을 어떻게 하든 자기로부터 감추든가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함을 마음속 깊이에서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갖가지 교의에 따라 바꾼 교회의 거짓 가르침을 손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 진정한 신앙은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교회의 신앙은 일종의 노예제도이다.
  • 어떤 제도가 비합리적이며 해로울수록 그것은 외적인 위엄을 자기의 주위에 펼치게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끌 수 없었기 때문에.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의식의 장엄함과 외적인 치장은 교회의 비합리적이며 해로운 본질을 보이는 중요한 표시이다.

생사 문제와 참된 신앙[편집]

  • 개인의 행복을 좇아 잡는 것이 인생이라는 견해에서 세계를 보는 경우, 사람들은 서로 멸망시키려는 인간끼리의 비이성적 투쟁만을 세계에서 보아왔다. 그러나 사람이 행복을 원하는 일이야말로 인생이라고 인정한다면 전혀 다른 것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우발적 현상인 인간끼리의 싸움보다도 우선 그는 끊임없이 서로 봉사하는 인간의 모습만을 이 세상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상호 봉사 없이는 세계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 삶을 그 진짜 모습으로 잡은 자에게 있어서, 병에 걸리거나 나이를 먹었다 해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슬퍼하는 일은 빛을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이 빛에 가까워짐에 따라서 자기의 그림자가 작아지는 것을 한탄하는 거나 다름없다. 또 육체가 멸망한다고 해서 자기의 삶도 멸망한다고 믿는 일은, 빛 속에 물체가 들어감에 따라서 물체의 그림자가 소멸하는 것을 보고, 물체 그 자체가 소멸한 확실한 표시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와 같이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그림자만을 너무 깊게 보았기 때문에 끝내는 그림자를 물체 자체라고 생각한 인간뿐이다.
  •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것이 결코 아니며, 항상 존재하여 왔고, 현재도 존재하고 있으며, 이제부터도 쭈욱 존재를 계속할 것을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자기가 불사(不死)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삶이 하나의 파도가 아니고 영구 운동임을――그 영구 운동이 하나의 파도의 높이로서 이 삶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이해할 때 비로소 자기가 불사임을 믿는 것이다.
  • 불사에 대한 신앙은 누구로부터도 받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내 마음에 불사의 신념을 심을 수도 없다. 불사에 대한 신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사가 존재하여야만 한다. 불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삶이 불사라는 한 점에서 자기의 삶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의 삶을 믿을 수 있는 자는 내 인생의 의무를 다하고, 벌써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이 삶 속에 확립한 자만이다.
  • 사람이 진실한 신앙을 몸에 붙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가 맹목적으로 믿어 온 그 신앙을 한때 버리고, 어릴 때부터 배워온 길을 하나하나 이성에 의하여 검토하여 보아야 하는 것이다.
  • 사람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더 좋지 않은 일은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 참된 신앙은 기적이나 성례나 의식을 믿는 일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나의 계율을 믿는 일이다.
  • 참된 신앙에 있어서는 교회도 장식도 찬송가도 모임도 필요없다. 오히려 참된 신앙이란 정숙하고 고독한 곳에서만 마음에 배어드는 것이다.
  • 만일 사람이 기도나 의식으로 하나님의 눈에 들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을 배반할 수는 없다. 배반할 수 있는 것은 자기뿐인 것이다.
  • 참된 신앙이란 어느 요일에 정진물을 먹고, 어느 요일에 교회에 가며 어떤 기도를 드릴 것인가를 아는 일이 아니라,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좋은 생활을 영위하며 늘 자기가 바라는 바를 이웃에게 해주는 데에 있다. 그곳에 진실한 신앙이 있다. 참된 현인, 또 모든 민족의 성자들은 모두가 항상 이러한 신앙을 가르쳐 온 것이다.

육체의 욕망과 영적인 사랑[편집]

  • 일부러 아기를 낳지 않을 연구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첫째, 그에 의하여 성애의 죄에 대한 벌인 아이를 기르는 괴로움에서 해방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둘째, 그것은 인간의 양심에 아주 반대되는 살인에 극히 가까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 임신중이거나 유아의 포유중에 성교를 하는 것도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성의 육체의 힘, 특히 정신력을 약하게 하는 것이므로.
  • 동정을 보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반대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동정을 보존하는 일은 가능하며 그것은 행복한 결혼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행복인 것이다.
  • 타락한 인간에 있어서는 성교에 대해 생각하며 얘기하는 일은 언제나 귀찮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 감정을 소중하게 하라. 이런 감정은 사람의 가슴 속에 이유없이 심어진 것이 아니다. 이 감정은 사람이 동정을 지키며 음란한 죄에 빠지지 않는 것을 돕는다.
  •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영적 사랑과 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로 불리워지고 있지마는 그것은 같을 수 없다. 이 두 개의 감정 사이의 공통된 점은 하나도 없다. 전자,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영적 사랑은 하나님의 목소리이며 후자, 즉 남녀간의 성애는 동물의 소리이다.
  • 모기가 불에 날아드는 것은 날개가 불에 탈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낚시밥을 삼키는 것은 그로 인하여 자기가 멸망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음탕한 육욕에 얽히면 반드시 몸을 망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육욕에 빠지는 것이다.
  • 부부 아닌 여자와의 성적 교섭은 남자에게 있어서 해로운가, 그런 문제는 남의 피를 마시는 것이 건강에 이로운가 해로운가 하는 것과 같다.
  • 육욕에 이기는 단 하나의 방법은 자기가 영적 존재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성욕의 실체, 즉 성욕은 저급한 동물적 본능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인가를 상기하기만 하면 된다.

국가와 인간 생활[편집]

  • 좋은 일을 하려고 마음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좋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빛나려고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더러움 없는 인간이 되려고 해야 한다. 인간의 영혼은 유리 그릇 속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 인간은 그 그릇을 더럽힐 수도 있고, 또 깨끗한 채 둘 수도 있다. 그릇의 유리가 더럽지 않을수록 진리의 빛은 유리를 통해서 빛나고 있다. 즉 그 인간 자신을 위해서, 또는 남을 위해서 빛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것이며, 자기의 그릇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항상 자기를 더럽히지 않도록 하라. 그러면 당신 자신의 발부리도 밝아질 것이고, 또 남의 발 밑도 비치게 될 것이다.
  • 현대의 세계에서 인간이 가지는 생활을 관찰하여, 즉 시카고나 파리나 런던 등 도시, 혹은 공장, 철도, 기계, 군대, 대포, 요새, 교회, 인쇄소, 박물관, 고층 건물을 빠짐없이 관찰하여 인간이 좋은 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첫째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자기에게 부과하여 봄이 좋다. 아마도 그 대답으로서는 우선 지금 인간이 하고 있는 쓸데없는 일을 아주 그만두게 할 일이라는 대답밖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현대 유럽 사회에서는 그러한 쓸데없는 일이 인간의 전 활동의 99퍼센트나 점하고 있는 것이다.
  • 국가는 허구의 존재이다. 실재한 것으로서의 국가는 지난날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다. 실재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간과 다른 인간들의 생활일 뿐이다.
  • 국가 속에 있으면서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데 국가의 모든 기구는 어떠한 자유와도 융합할 수 없는 폭력을 토대로 하는 것이다.
  • 사람들은 폭력적 권력을 인정하고 이에 복종하고 있는데 그것은 만일 그런 권력이 없으면 악인이 폭력을 휘둘러 착한 사람을 괴롭히지나 않을까 하는 위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필요 없음을 알아야 할 때다. 왜냐하면 현재의 권력 아래서도 역시 악인은 폭력을 휘둘러 착한 사람을 괴롭히고 있고, 그것은 이 권력이 없어지면 착한 사람에 대한 악인의 이런 행패가 더 심해지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 무정부 사회란 공익시설이 없는 사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사람을 종속시키는 따위의 기관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성을 가진 인간 사회는 무정부 사회 이외의 사회일 수가 없고 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 황제나 재상이나 부자들이, 인간은 국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반대로 국가 때문에 괴로움만 받는 가난뱅이들은 왜 국가를 옹호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국가에 대한 엉터리 속설을 믿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 국가에 대한 엉터리 속설은 거짓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점만으로도 해로운데, 더욱 해로운 것은 양심과 하나님의 계율에 반대되는 일을, 즉 가난뱅이로부터 재물을 빼앗으며, 사람을 재판하고, 사형에 처하고, 전쟁을 하는 등의 일을 선인들에게 시키고, 그러한 일은 모두가 나쁜 일이 아니라고 그들이 생각하게끔 만든 점이다.
  • 국민을 지배하는 자들은 반드시 잔인하고 배덕적이며 그 시대와 사회의 사람들의 평균적 도덕 수준보다 반드시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이어야 하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권력을 무엇 때문에 행사하는가 하는 본질을 생각하면 된다. 도덕적 인간뿐만 아니라 완전히 배덕적이 아닌 인간이라도 제위에 오르기도 하고, 재상도 되고, 입법자도 되고, 또 국민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재결자가 되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유덕한 위정자란 처녀 매소부라든가 절도 있는 큰 술꾼이라든가 부드러운 강도 등과 같이 본질적으로 모순당착에 차 있는 말이다.
  • 세계의 강자들은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들에게만 위대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릎을 일으키고 똑바로 서서 보면 그렇게 위대하게 보이던 자들이 자기와 똑같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국가 조직이 갖는 첫번째 악은 인간 생활을 망치는 점이 아니라 사랑을 망치고 사람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는 점에 있다.
  • 내가 누구이건, 설령 남을 압박하는 부유 계급에 속하는 인간이건, 남에게 압박을 받는 노동자 계급에 속한 인간이건, 어떤 경우에도 비복종의 불이익은 복종의 불이익보다 훨씬 크다.

권력과 폭력[편집]

  • 권력을 얻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사랑하여야만 한다. 권력욕은 성실과는 상관없고, 거만·잔인 등 성질과는 반대되는 사실과 맺어진다. 자기를 높이고 남을 낮추는 일 없이는, 위선과 사기 없이는, 감옥·요새·사형·살인 없이는 어떠한 권력도 생길 수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
  • 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은 입을 모아 악인이 선인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못하게끔 하기 위해서야말로 권력이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이야말로 악인으로부터 선인을 지켜주는 제일의 선인임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폭력을 쓴다는 것을 뜻하며, 폭력을 쓴다는 것은 폭력을 받는 자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그리고 아마도 폭력을 가하는 자도 역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제당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자신은 당하고 싶지 않은 일, 즉 악을 남에게 행하는 것을 뜻한다. 복종한다 함은 폭력보다 인내를 골라잡는 것을 뜻한다. 폭력보다 인내를 골라잡는다는 일은 선인이 되고 싶은 것을, 혹은 적어도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가하는 자들보다는 선인이 됨을 뜻한다. 따라서 권력의 행사를 받는 자들보다 선인이 아닌 자들, 혹은 악인들이 권력을 행사해 왔고, 지금도 행사하고 있다고 대개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에 복종하는 자들 속에도 악인은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보다 선인이 보다 악인에 대해서 권력을 행사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한다면 겸허하며 참을성 있고 악에 대하여 폭력으로 대하지 않는, 창피를 당해도 용서하며 적을 사랑하는 자를 선인(善人)이라 한다. 악인이란 뻐기며 권력을 행사하며 싸우며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자를 말한다.
  • 악인은 선인에 대해서 늘 권력을 휘두르며, 늘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 권력을 잡고 돈과 높은 자리를 가지며 호사한 생활을 하는 일이 일생 일대의 훌륭한 목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목적에 도달할 때까지의 일이고, 그런 것들을 입수하자마자 그것 자체의 가치없음을 드러내고 끌어 붙이는 힘을 차츰 잃어가는 것이다. 즉 그런 것은 멀리서 볼 때만 형태와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는 구름 같은 것이다. 구름 속에 들어가면 아름답다고 생각되던 것은 모두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주석[편집]

본 문서에는 다음에서 GFDL로 공개한 백과사전인 글로벌 세계대백과의 설명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키백과
위키백과에 이 글과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