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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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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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중국어 정체: 魯迅, 간체: 鲁迅, 병음: Lǔ Xùn, 1881년 9월 25일 ~ 1936년 10월 19일)은 중국의 소설가이다.

출처 있음[편집]

  • 무지인민들이여,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건강하고 이 강력한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오직 목적없는 진열대나 감시자 처럼 섬길 수 만 있다. 우리는 그들이 죽거나 병에 걸렸을때 슬퍼할 필요가 없다.
    • 중국어: 凡是愚弱的國民,即使體格如何健全,如何茁壯,也只能做毫無意義的示眾的材料和看客,病死多少是不必以為不幸的
Call to Arms (1922년)

《무덤》[편집]

  • 내 가증스러움은 종종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술을 끊고 어간유를 먹는 것은 내 성명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도리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대부분은 바로 나의 적―그들에게 좀 점잖게 말한다 해도 적일 뿐이다―을 위해 그들의 좋은 세상에다 얼마간 결함을 남겨 주려는 것이다. 군자의 무리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왜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군벌을 욕하지 않느냐? 이 역시 비겁한 짓이다!" 그러나 나는 유인하여 죽이려는 이러한 수법에 넘어가고 싶지 않다. 목피도인이 "몇 년 동안 집안의 부드러운 칼로 목을 베니 죽음을 느끼지 못했다"라고 잘 말했듯이, 나는 오로지, 자칭 '총이 없는 계급'이라고 하지만 실은 부드러운 칼을 들고 있는 요괴들을 질책하려 한다.
    • 〈제기〉(1926)
  • 오늘날 세상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연의 힘은 이미 인간의 명령을 따르며 조종당하고 있으니, 인간은 마치 말을 부리듯이 기계로써 제어하여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교통수단은 바뀌어 이전 시대보다 편리하게 되었으며, 설령 고산대천이라 하더라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 〈과학사교편〉(1907)
  • 대개 과학의 발견이란 항상 초과학의 힘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를 쉬운 말로 표현하면 비과학적 이상의 감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유명한 학자들은 대체로 이러했다. 랑케는 "무엇이 인간을 도와 그에게 진정한 지식에 이르도록 했는가? 그것은 실제적인 것도 아니요, 지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바로 이상이다"라고 했다.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삼을 만하다. 영국의 헉슬리는, 발견은 영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인간의 능력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이러한 영감이야말로 곧 진리의 발견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영감이 있으면 중간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자라도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으며, 이러한 영감이 없으면 비록 천재의 재능을 가진 자라도, 사업은 끝내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말 것이라 했다. 이러한 지적은 대단히 심각하고 절실하여 경청할 만하다.
    • 〈과학사교편〉(1907)
  • 다만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회가 편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날이 한 극단으로 내달리면 정신은 점차 소실되고 곧 파멸이 뒤따를 것이다. 온 세상이 오로지 지식만을 숭상한다면 인생은 틀림없이 무미건조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오래가면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과 명민한 사상은 소실되어, 이른바 과학도 마찬가지로 없어지고 말 것이다.
    • 〈과학사교편〉(1907)
  • 그렇지만 구미의 열강이 모두 물질과 다수로써 세계에 빛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그 근저에 인간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나 다수는 다만 말단적인 현상일 뿐이며, 근원은 깊어 통찰하기 어렵고 화려한 꽃은 드러나게 마련이어서 쉽게 눈에 띄는 법이다. 이 떄문에 천지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열강과 가축을 벌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확립하는 일이다. 사람이 확립된 이후에는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사람을 확립하게 위한 방법으로는 반드시 개성을 존중하고 정신을 발양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 데에는 한 세대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예로부터 본래 물질을 숭상하고 천재를 멸시해 왔으므로 선왕의 은택은 나날이 없어지고 외부의 압력을 받게 되면서 마침내 무기력해져 자기조차 보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하찮은 재주를 가진 교활한 무리들이 크게 부르짖고 과장하면서 물질로써 말살하고 다수로써 구속하여 개인의 개성을 남김없이 박탈하고 있다. 과거에는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생긴 반신불수였고, 지금은 왕래를 통해 전해진 새로운 질병을 얻게 되었으니, 이 두 가지 질병이 교대로 뽐내면서 중국의 침몰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아아,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니 더 지속할 수가 없구나!
    • 〈문화편향론〉(1907)
  • 이제 중국에서 찾아보아, 정신계의 전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지극히 진실한 소리를 내어 우리를 훌륭하고 강건한 데로 이끌 사람이 있는가? 가정과 나라가 황폐해졌지만 최후의 애가를 지어 천하에 호소하고 후손에게 물려 줄 예레미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 사람이 태어나지 않았거나 아니면 태어났지만 군중에게 살해되었을 텐데, 그중 한 경우이거나 두 경우 다이기 때문에 중국은 마침내 적막해졌다.
    • 〈마라시력설〉(1907)
  • 우리는 지나간 사람들을 추도한 뒤에 자기나 다른 사람이나 모두 순결하고 총명하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을 빌어야 한다. 허위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자기와 남을 해치는 세상의 몽매와 폭력을 제거할 것을 빌어야 한다.
    우리는 지나간 사람들을 추도한 뒤에 인생에 조금도 의의가 없는 고통을 제거할 것을 빌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만들어 내고 감상하는 몽매와 폭력을 제거할 것을 빌어야 한다.
    우리는 또 인간은 다 정당한 행복을 누리게 해야 한다고 빌어야 한다.
    • 〈나의 절열관〉(1918)
  • 종합하면, 각성한 부모는 전적으로 의무를 다하고, 이타적·희생적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고, 중국에서는 더더욱 쉽지 않다. 중국의 각성한 사람들이 어른에게 순종하고 어린 사람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낡은 것들을 청산하고 한편으로 새 길을 개척해야 한다. 바로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스스로 인습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암흑의 수문을 어깨로 걸머지어 그들을 넓고 밝은 곳으로 놓아주면서 그후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도리에 맞게 사람 노릇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위대하고 긴요한 일이며 또 대단히 어렵고 지난한 일이다.
    • 〈지금 우리는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할 것인가〉 (1919)
  • 그래서 노라를 위해 헤아려 볼 때, 돈이―고상하게 말하면 바로 경제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자유는 물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팔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한 가지 큰 결점이 있는데, 바로 항상 배고프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꼭두각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오늘날 사회에서 경제권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 (1923)
  •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제군들은, 성각건대 십중팔구는 천재의 탄생을 바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상황은 이러하여, 천재가 태어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천재를 배양하는 흙이 마련되기도 어렵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천재는 대부분 천부적인 것입니다만, 모두들 천재를 배양하는 흙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흙이 되는 역할은 천재를 바라는 것보다 더욱 절실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천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흙이 없어 잘 자랄 수 없게 되어 마치 접시에 담은 녹두 콩의 싹과 같아질 것입니다.
    흙이 되려면 정신을 확대해야 합니다. 바로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이고 낡은 외투를 벗어던져야 장래에 태어날 천재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작은 일 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창작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창작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번역하고, 소개하고, 감상하고, 읽고, 보고, 심심풀이하는 것도 다 좋습니다. 문예를 가지고 심심풀이한다는 것은, 말하고 보니 다소 우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천재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야 낫습니다.
    흙은 천재에 비하여 당연히 보잘것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움을 잘 참아 내지 않으면 흙이 되기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이란 사람이 하기에 달렸으니 공연히 천부적인 천재를 기다리는 것보다야 확실함이 있습니다. 이 점이 흙의 위대한 점이며 도리어 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점입니다. 또한 보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꽃은 흙으로부터 나오는데, 보는 사람이 즐겁게 감상하는 것은 물론이요, 흙 자신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꼭 자신이 꽃이 되어야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은 아닙니다.―이는 흙도 영혼이 있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 〈천재가 없다고 하기 전에〉 (1924)
  • 공로 선생은 "자기만 못한 사람을 벗 삼지 말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세력과 이익을 따지는 이러한 안목은 오늘날 세상에도 아주 흔하다. 우리 스스로가 본국의 꼴을 살펴보면 벗이 있을 리 없음을 알게 된다.
    • 〈잡다한 추억〉 (1925)
  • 나는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쌓여 있는 원한과 분노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강자에게서 유린을 당하여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강자에게는 반항하지 않고 도리어 약자 쪽에 발산한다. 군인과 비적은 서로 싸우지 않고 총이 없는 백성만이 군인과 비적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최근 쉽게 볼 수 있는 증거이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이는 이들의 비겁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비겁한 사람은 설령 만 장 높이의 분노의 불길이 있다 해도 연약한 풀 이외에 더 무엇을 태울 수 있겠는가?
    • 〈잡다한 추억〉 (1925)
  • 중국인들은 여러 가지 면을 대담하게 정시하지 못하고 감춤과 속임을 가지고 기묘한 도피로를 만들어 내었는데, 스스로는 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길 위에 있다는 것이 바로 국민성의 비겁함, 나태함, 교활함을 증명하고 있다.
    • 〈눈을 크게 뜨고 볼 것에 대하여〉 (1925)
  • 듣자 하니, 용감한 권법가는 이미 땅에 쓰러진 적수를 절대 더 이상 때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참으로 우리가 모범으로 받들 만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 부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적수도 용감한 투사라야 하는데, 일단 패배한 후에는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며 더 이상 달려들지 않거나 당당하게 나와 상대에게 복수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물론 안 될 것이 없다. 그러나 개의 경우, 이를 끌어다 예로 삼으면서 대등한 적수로 동등하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개가 아무리 미친 듯이 짖어 대더라도 사실 개는 '도의' 같은 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1925)
  • 요컨대, 물에 빠진 개를 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첫째로 그놈이 언덕으로 기어 올라온 다음의 태도를 보아야 한다.
    개의 본성은 어쨌든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령 일만 년 후라 하더라도 아마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지금이다. 만약 물에 빠진 뒤에 아주 불쌍하게 여긴다고 하면 사람을 해치는 동물 가운데 불쌍한 것은 참으로 많다. 콜레라 병균만 하더라도 비록 빠르게 번식하지만 그 성격은 오히려 얼마나 온순한가. 그렇지만 의사들은 결코 그놈을 놓아두지 않는다.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1925)
  • 속담에 "충직하고 온후한 것은 쓸모가 없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것이 있는데, 조금은 너무 냉혹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라고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수많은 고초의 경험을 귀납한 후에 나온 경구라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다는 설을 보면, 그것이 만들어진 원인은 대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때릴 힘이 없는 경우이고, 둘째는 비교를 잘못한 경우이다. 전자는 잠시 논외로 하고, 후자의 큰 잘못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거덜 난 인물을 물에 빠진 개와 같이 보는 잘못을 범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거덜 난 인물이 좋은지 나쁜지 분간하지 못하고 일률적으로 동일시하여 그 결과 도리어 악을 방임하게 되는 경우이다. 즉, 오늘날을 두고 말하면 정국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참으로 굴러가는 바퀴처럼 이쪽이 일어나면 저쪽이 넘어지는 꼴이어서 나쁜 사람은 빙산에 기대어 거리낌 없이 나쁜 짓을 자행하고, 일단 실족하면 갑자기 동정을 구걸한다. 그러면 남이 물리는 것을 직접 보았거나 직접 물림을 당한 어리숙한 사람은 어느덧 그를 '물에 빠진 개'로 보면서 때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엾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당한 도리가 이미 실현되었으니 이때야말로 의협은 바야흐로 내 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놈은 진짜 물에 빠지지 않았으며, 소굴은 이미 잘 만들어 놓았고, 식량은 벌써 충분히 저장해 두었으며, 게다가 그것들을 다 조계에 해두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비록 이따금 부상을 당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아 기껏해야 절룩거리는 시늉을 하여 잠시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켜 조용히 피해 숨으려는 것뿐이다. 다른 날 다시 나타나서 예전처럼 먼저 어리숙한 사람을 무는 일부터 시작하여 "돌을 던져 우물에 빠뜨리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 원인을 찾아보면 부분적으로는 바로 어리숙한 사람이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좀 가혹하게 말한다면 역시 스스로가 판 무덤에 스스로 빠진 격이니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다.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1925)
  • 어진 사람들은 혹시,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페어플레이'를 해서는 안 되는가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나는 즉각, 물론 해야 하는데 그렇지만 아직은 이르다고 대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네는 독 안에 들어가게"라는 방법이다. 어진 사람들은 꼭 이 방법을 쓰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래도 그것이 일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토신사 또는 양신사들은 늘 중국은 특별한 나라 사정이 있어 외국의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등등의 것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 '페어플레이'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당신에게 '페어'하지 않는데 당신이 오히려 그에게 '페어'하여 그 결과 도무지 자기만 손해를 보게 된다. '페어'하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페어'하지 않으려 해도 그것마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래서 '페어'하려면 가장 좋은 것은 우선 상대를 잘 보는 것이다. 만약 '페어'를 받아들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 전혀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그놈도 '페어'하게 되었을 때, 그때 가서 다시 그놈과 '페어'를 따져도 늦지 않다.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1925)

《열풍》[편집]

  • 우리 중국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대다수이므로 앞으로 필요한 것은 오로지 '사람'의 아버지일 뿐이다!
    • 〈수감록 25〉
  • 사실 중국에서 소위 유신 이래로 진정으로 과학이 있었던 적은 없다. 최근 유가와 도가의 제공들은 농간이나 부리고 인사를 살피지 않았던 역사의 후과를 모두 과학의 신상에 갖다 붙인다. 뿐만 아니라 무엇이 도덕인지, 어떤 것이 과학인지를 묻지 않고 함부로 지껄이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일을 만들 따름이다.
    • 〈수감록 33〉
  • 내 벗이 한 말이 옳다. "우리가 국수를 보존한다면, 모름지기 국수도 우리를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보존하는 것이 분명 첫번째 진리이다. 국수이건 아니건 간에 그것이 우리를 보존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를 물어보면 된다.
    • 〈수감록 35〉
  •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사람' 노릇을 잘해 보려 해도 혈관에 있는 혼미한 요소가 농간을 부리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단전과 불장술을 연구하는 인물로 변하고 만다. 정녕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혼미할 사상의 유전이라는 폐해가 백에 하나도 비껴가지 못하는 매독만큼 강력하지 않기를 나는 늘 희망하고 있다. 설령 매독과 마찬가지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606의 발명으로 육체적인 질병은 치료할 수 있으므로 이제 나는 707 같은 약이 발명되어 사상적인 질병을 치료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알고 보니 이런 약은 벌써 발명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과학'이다. 정신적으로 코가 문드러진 벗들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병'이라는 기치로 복약에 반대하지 않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언젠가는 중국의 혼미병이 온전히 치료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 〈수감록 38〉
  • 우리는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 꾀꼬리라면 꾀꼬리처럼 소리치고, 올빼미라면 올뺴미처럼 소리치면 된다. 우리는 거들먹거리며 사창가를 빠져나오자마자 "중국의 도덕이 제일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소리를 배워서는 안 된다.
    • 〈수감록 40〉
  • 진보적 미술가, 이것은 내가 중국 미술계에 요구하는 것이다.
    미술가는 물론 숙련된 기술이 있어야 하지만, 진보적 사상과 고상한 인격이 더욱 필요하다. 그의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그림 한 장이거나 조각상 하나일 따름이지만 실은 그의 사상과 인격의 표현이다. 우리들이 즐거이 감상하도록 해줄 분만 아니라, 특히 감동을 불러일으켜 정신적인 영향을 끼친다.
    • 〈수감록 43〉
  • 중국 사회의 상태는 정녕 수십 세기를 한껴번에 축소시켜 놓은 형국이다. 송진 기름에서 전등까지, 외바퀴 수레에서 비행기까지, 표창에서 기관포까지, '법리에 대한 망언' 금지에서 헌법수호에 이르기까지, "고기를 먹고 가죽을 깔고 자던" 식인사상에서 인도주의에 이르기까지, 제사를 지내고 뱀에게 절하던 것에서 미육으로 종교를 대신하기를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뒤죽박죽 존재한다.
    많은 사물들이 한곳에 몰려 있는 형국은 마치 우리 세대가 수인씨 이전의 옛사람들과 함께 식당을 연 것과 같다. 애써 잘 조절해도 반쯤 설익을 뿐이고 동료들이 한마음이 되지 못하므로 장사가 잘될 리가 없고 점포는 결국 폐업하고 말 것이다.
    • 〈수감록 54〉
  •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신선이 되고자 하고, 땅에서 태어났으면서 하늘에 오르려 한다. 분명히 현대인이고 현재의 공기를 마시고 있으면서도, 하필이면 썩어 빠진 명교와 사후강직된 언어를 강요하며 현재를 여지없이 모멸한다. 이들은 모두 '현재의 도살자'이다. '현재'를 죽이고 '장래'도 죽인다. 그런데 장래는 후손들의 시대이다.
    • 〈현재의 도살자〉
  • 폭군 치하의 신민은 대개 폭군보다 더 포악하다. 폭군의 폭정은 종종 폭군 치하에 있는 신민의 욕망을 실컷 채워 주지 못한다.
    중국은 거론할 필요도 없을 터이므로 외국의 사례를 들어 보기로 한다. 사소한 사건이라면 Gogol의 희곡 『검찰관』에 대하여 군중은 모두 그것을 금지했지만 러시아 황제는 공연을 허락했다. 중대한 사건으로는 총독은 예수를 석방하려고 했지만 군중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요구했다.
    폭군의 신민은 폭정이 타인의 머리에 떨이지기만을 바란다. 그는 즐겁게 구경하며 '잔혹'을 오락으로 삼고 '타인의 고통'을 감상거리나 위안거리로 삼는다.
    자신의 장기는 '운 좋게 피하는 것'뿐이다.
    '운 좋게 피한'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다시 희생으로 뽑혀 폭군 치하에 있는 피에 목마른 신민들의 욕망을 채워 주게 되지만,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는 사람은 '아이고'하고, 산 사람은 즐거워하고 있다.
    • 〈폭군의 신민〉
  • 무릇 희생이 제단 앞에 피를 뿌린 후에 사람들에게 남겨지는 것은 정녕 '제사 고기 나눠먹기'라는 한 가지뿐인 것이다.
    • 〈작은 일을 보면 큰 일을 알 수 있다〉

《외침》[편집]

  •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그렇다. 비록 내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희망을 말하는데야 차마 그걸 말살할 수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 소관이고 절대 없다는 내 증명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도 글이란 걸 한번 써 보겠노라 대답했다. 이 글이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다. 그후로 내디딘 발을 물리기가 어려워져 소설 비슷한 걸 써서 그럭저럭 친구들의 부탁에 응했다. 그러던 것이 쌓여 십여 편이 되었다. 생각건대 나는 이제 절박해도 입도 벙긋 못 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지만, 아직도 지난 날 그 적막 어린 슬픔은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어쩔 수 없이 몇 마디 고함을 내지르게 된다. 적막 속을 질주하는 용사들에게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도록 얼마간 위안이라도 주고 싶은 것이다.
    • 〈서문〉
  •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사천 년간 내내 사람을 먹어 온 곳.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도 그 속에서 몇 년을 뒤섞여 살았다는 걸. 공교롭게도 형이 집안일을 관장할 때 누이동생이 죽었다. 저자가 음식에 섞어 몰래 우리에게 먹이지 않았노라 장담할 순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이동생의 살점 몇 점을 먹지 않았노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젠 내 차례인데…….
    사천 년간 사람을 먹은 이력을 가진 나, 처음엔 몰랐지만 이젠 알겠다. 제대로 된 인간을 만나기 어려움을!
    • 〈광인일기〉
  • 사람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가 혹 아직도 있을까?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 〈광인일기〉
  • 그 뒤로 또 오랫동안 쿵이지를 보지 못했다. 연말이 되자 주인은 칠판을 떼 내리며 말했다. "쿵이지는 아직도 외상이 열아홉 푼 남았구만!" 그 다음 해 단옷날이 되어서도 또 그랬다. "쿵이지는 아직도 외상이 열아홉 푼 남았구만!" 그러나 올 추석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연말이 왔어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를 보지 못했다. 아마 죽었으리라.
    • 〈쿵이지〉
  • 바람은 완전히 멎었고 길은 여전히 정적이었다.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면 어떡하지? 아까 일은 잠시 접어 둔다 해도 한 줌 동전은 또 무슨 의미였을까? 그를 치하하려고? 내가 그를 심판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 〈작은 사건〉
  • 나는 드러누워 배 밑창의 철썩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내가 내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룬투와 이 지경으로 멀어졌지만 우리 후배들은 여전히 한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훙얼은 지금 수이성을 못 잊어 하지 않은가? 바라기는, 저들이 더 이상 나처럼 되지 말기를, 또 모두에게 틈이 생기지 않기를……그렇다고 또 저들이 의기투합한답시고 나처럼 고통에 뒤척이며 살아가진 말기를, 또 룬투처럼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진 말기를, 또 다른 이들처럼 고통에 내맡기며 살아가진 말기를. 저들은 새로운 삶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삶을.
    희망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갖겠다고 했을 때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아직도 우상을 숭배하며 언제까지 연연해할 거냐고.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 낸 우상이 아닐까? 그의 소망은 비근한 것이고 내 소망은 아득한 것일 뿐.
    몽롱한 가운데 바닷가 푸른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 검푸른 하늘엔 노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고향〉
  • 건달은 이에 그치지 않고 더 짓궃게 굴었다. 끝내 주먹다짐이 오가기에 이르렀다. 형식적으로 보면 아Q는 패배했다. 놈이 아Q의 누런 변발을 휘어잡고 너덧 번 벽에다 머리를 쾅쾅 찧고 나서 만족스러운 듯 의기양양하게 가 버렸으니 말이다. 아Q는 잠시 서서 생각했다. '아들놈한테 얻어 맞은 걸로 치지 뭐. 요즘 세상은 돼먹지가 않았어…….' 그러고는 그도 흡족해하며 승리의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아Q는 속에 있는 생각을 매법 뒤에 가서 내뱉었다. 그래서 아Q를 놀려 대는 자들 거의 전부가 그에게 일종의 정신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 그의 누런 변발을 낚아챌 때는 아예 이렇게 못 박아 두는 것이었다.
    "아Q, 이건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떄리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 봐!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라고!"
    아Q는 양손으로 변발 밑둥을 틀어쥐고는 머리를 뒤틀며 말했다.
    "버러지를 떄리는 거야, 그럼 됐지? 나는 버러지야, 이래도 안 놔?"
    버러지라고 해도 건달은 놓아주는 법이 없었다. 늘 그래 왔던 대로 가까운 데 아무 데다 대고 몇 번 머리를 쾅쾅 짛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하게 가 버리는 거였다. 이번에야말로 아Q도 꼼짝 못하겠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십 초도 안 되어 아Q도 흡족해하며 승리의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야말로 자기를 경멸할 수 있는 제일인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경멸'이란 말을 제외하면 남는 건 '제일인자'였다. '장원급제'한 자도 '제일인자'가 아닌가? "네깟 놈이 뭐라고!?"
    • 〈아Q정전〉
  • 여론으로 말하자면, 웨이좡에선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모두들 아Q가 나빴다는 거였다. 총살을 당한 것이 그가 나쁜 증거라는 것이다. 그가 나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총살을 당했단 말인가? 그러나 도시의 여론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들 대다수가 불만이었다. 총살은 싹둑 하는 것만큼 좋은 구경거리가 못 된다는 거였다. 게다가 그 웃기는 사형수라니, 그리 오래도록 끌려다녔건만 노래 한 구절 뽑지도 못하다니……괜히 헛걸음질만 시켰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 〈아Q정전〉

《들풀》[편집]

  • 나는 이러기를 바라오, 동무―
    나 홀로 먼길을 가오. 그대가 없음은 물론 다른 그림자도 암흑 속에는 없을 것이오. 내가 암흑 속에 가라앉을 때에, 세계가 온전히 나 자신에 속할 것이오.
    • 〈그람자의 고별〉
  • 나는 앞으로 다른 사람의 보시를 받지 못할 것이며 보시할 마음도 사지 못할 것이다. 나는 보시의 윗자리에 서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성가셔함, 의심, 미움을 살 것이다.
    나는, 무위와 침묵으로 동냥하리라!……
    나는 적어도, 허무는 얻을 것이다.
    산들바람이 일고, 사방이 먼지이다. 다른 몇 사람이 각자 제 길을 간다.
    먼지, 먼지, ……
    ……
    먼지……
    • 〈동냥치〉
  • 나는 몸소 이 공허 속의 어둔 밤과 육박하는 수밖에 없다. 몸 밖에서 청춘을 찾지 못한다면 내 몸 안의 어둠이라도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어둔 밤은 어디 있는가? 지금 별이 없고, 달빛이 없고, 막막한 웃음, 춤사위치는 사랑도 없다. 청년들은 평안하고 내 앞에도, 참된 어둔 밤이 없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
    • 〈희망〉

《화개집》[편집]

  • 글자의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품고 있는 뜻은 여전히 예와 다름없다.
    • 〈글자를 곱씹다〉
  • 오대, 남송, 명말의 사정을 기록한 것을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비슷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유독 우리 중국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듯하다. 현재의 중화민국은 여전히 오대요, 송말이요, 명말이다.
    • 〈문득 생각나는 것〉
  • 전사가 전사했을 때, 파리들이 제일 먼저 발견하는 것은 그의 결점과 상처 자국이다. 파리들은 빨고 앵앵거리면서 의기양양해하며, 죽은 전사보다 더욱 영웅적이라 여긴다. 그러나 전사는 이미 전사하여, 더 이상 그들을 휘저어 내쫓지 못한다. 그리하여 파리들은 더욱 앵앵거리면서, 불후의 소리라고 스스로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의 완전함은 전사보다 훨씬 더 위에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어느 누구도 파리들의 결점과 상처를 발견한 적이 없다.
    그러나 결점을 지닌 전사는 어쨌든 전사이고 완미한 파리 역시 어쨌든 파리에 지나지 않는다.
    꺼져라, 파리들이여! 비록 날개가 자라나 앵앵거릴 수 있지만, 끝내 전사를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너희 이 벌레들아!
    • 〈전사와 파리〉
  • 젊은이가 황금 글자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스승을 꼭 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벗을 구해 힘을 합쳐, 생존할 수 있을 만한 방향을 향하여 함께 나아가는 게 나을 것이다. 그대들은 생명력이 충만하니, 깊은 숲을 만나면 평평한 땅으로 일굴 수 있고, 넓은 들판을 만나면 나무를 심을 수 있으며, 사막을 만나면 우물을 팔 수 있다. 가시덤불로 길이 막힌 낡은 길을 물어 무엇하며, 탁하고 독한 기운으로 가득 찬 똥 같은 스승을 구해 무엇하랴!
    • 〈스승〉
  • 요컨대, 역사서를 읽으면 중국의 개혁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국민성일지라도 개혁해야 할 것은 개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잡사와 잡설에 씌어 있는 것이 바로 앞선 수레의 바퀴자국이다.
    • 〈이것과 저것〉
  • 중국 사람들은 자기를 불안케 할 조짐이 있는 인물을 만나면, 지금껏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 왔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을 억누르거나, 아니면 받들어 올리는 것이다.
    • 〈이것과 저것〉
  • 중국인은 "싸움에 앞장서지 않고" "화를 먼저 당하려 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복을 먼저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슨일이나 개혁하기가 쉽지 않다. 선구자나 선봉장은 대체로 누구나 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인성이 어찌 참으로 도가에서 말하듯 물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얻고 싶은 것이 오히려 많은 법. 직접 얻어 낼 용기가 없는 이상, 음모와 술수를 쓰는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날로 비겁함을 드러내어, "앞장서지 않"음은 물론 "꼴찌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용기도 없다.
    • 〈이것과 저것〉

《화개집속편》[편집]

  • 지금 초등학생은 칠색판을 잘 갖고 노는데 여기에는 일곱 종류의 색깔이 원판에 칠해져 있다. 정지하면 색깔이 고운데 회전하면 바로 회색으로 바뀐다. 원래는 흰색이어야 하는데 제대로 색칠하지 않아서 회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허다한 저명 학자의 대저작을 모은 대형 간행물도 당연히 다채롭고 신기하지만, 마찬가지로 잘 회전하지 못해서 한 바퀴 뱅그르르 돌면 어쩔 수 없이 회색빛을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그 책의 특색인 것 같지만 말이다.
    • 〈참견과 학문, 회색 등을 같이 논함〉
  • 베이징과 톈진 사이에 허다한 크고 작은 전쟁에서 부지기수의 사람들이 전사했는데, 이를 '빨갱이 토벌'이라고 했다. 집정부 앞에서의 일제 사격으로 죽은 청원자가 마흔일곱 명이고 부상자가 백여 명이며 '폭도를 이끌었다'고 쉬첸 등의 다섯 명에게 지명수배령이 떨어졌는데, 이것도 '빨갱이 토벌'을 했다고 한다. 펑톈 지역 비행기가 베이징의 하늘에 세 번 출현하고 폭탄을 투하하여 부인 둘이 죽고 누렁이 한 마리가 다쳤는데, 이것도 '빨갱이 토벌'이라고 한다.
    베이징과 톈진 사이에서 전사한 병사와 베이징에서 폭탄으로 죽은 두 부인과 다친 누렁이 한 마리가 '빨갱이'인지 아닌지 여부를 아직 '확정 발표'가 없어 비천한 국민은 알 수 없다. 집정부 앞에서 총살당한 마흔일곱 명에 대해서 첫번째 '확정 발표는 '과실 상해'라고 이미 났다. 수도 지역 검찰청 공문은 또다시 "이번 청원의 목적은 정당하며 부정한 행동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국무원회의도 '우대하여 구제할 계획'이라 한다. 그러면 쉬첸 등이 이끈 '폭도'들은 어디로 가 버렸나? 그들은 부적이 있어서 총과 대포를 피할 수 있었단 말인가?
    • 〈이 같은 '빨갱이 토벌'〉
  • 우리의 많은 생명이 허비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래도 이른바 장래에 대한 희망에 있습니다. 희망은 존재에 덧붙여져 있으며 존재가 있으면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빛이 있습니다. 역사가의 말이 기만하는 말이 아니라면 세계의 사물이 암흑으로 오래 존재한 선례는 아직 없습니다. 암흑은 곧 멸망하는 사물에 빌붙을 수밖에 없고 암흑도 더불어 같이 멸망하며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장래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빛날 것입니다. 암흑에 달라붙지 않고 광명을 위해 멸망한다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유구한 장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광명으로 밝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 〈강연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