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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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마오쩌둥(중국어 간체: 毛泽东, 정체: 毛澤東, 병음: Máo Zédōng, 1893년 12월 26일 ~ 1976년 9월 9일)은 중국의 정치가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초대 주석이 되었다.

어록[편집]

  • 革命不是请客吃饭,不是做文章,不是绘画绣花,不能那样雅致,那样从容不迫,文质彬彬,那样温 良恭俭让。革命是暴动,是一个阶级推翻一个阶级的暴烈的行动。
    • 혁명은 손님을 청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고 글을 짓는 것이 아니고 그림을 그리고 꽃수를 놓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우아하고 침착하고 문질빈빈하며, 온화하고 선량하고 공경하고 절약하고 겸양해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혁명은 폭동이다. 한 계급이 또 다른 계급을 뒤엎는 격렬한 행동이다.
    • 〈후난농민운동고찰보고〉(1927년 3월)
  • 在阶级社会中,每一个人都在一定的阶级地位中生活,各种思想无不打上阶级的烙印。
    • 계급사회에서 사람마다 모두 특정한 계급적 지위 속에서 살고 있고, 어떤 사상이든 계급의 낙인을 찍지 않은 것이 없다.
    • 〈실천론〉(1937년 7월)
  • “战争是政治的继续”,在这点上说,战争就是政治、战争本身就是政治性质的行动,从古以来没有不带政治性的战争。
    • ‘전쟁은 정치의 계속이다.’ 이 점에서 말하면 전쟁이 바로 정치이고, 전쟁 자체가 바로 정치적 성격을 가진 행동이다. 예로부터 정치성을 띠지 않은 전쟁이란 없었다.
    • 〈지구전을 논함〉(1938년 5월)
  • 每个共产党员都应懂得这个真理:“枪杆子里面出政权”。
    • 공산당원마다 모두 이 진리를 알아야 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 〈战争和战略问题〉(1938년 11월 6일)
  • 我们的原则是党指挥枪,而决不容许枪指挥党。
    • 우리의 원칙은 당이 총을 지휘하는 것이고, 총이 당을 지휘하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 〈战争和战略问题〉(1938년 11월 6일)
  • 人总是要死的,但死的意义有不同。中国古时候有个文学家叫做司马迁的说过:“人固有一死,或重于泰山,或轻于鸿毛。”为人民利益而死,就比泰山还重;替法西斯卖力,替剥削人民和压迫人民的人去死,就比鸿毛还轻。
    • 사람은 어쨌든 죽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의미에는 다름이 있다. 중국의 고대에 사마천이라는 문학가가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데, 그 죽음에는 태산보다 무거운 것도 있고, 기러기 털보다 가벼 운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인민의 이익을 위해 죽으면 태산보다 무거운 것이지만 파쇼 대신 애쓰고, 인민을 착취하고 압박한 사람 대신 죽으면 기러기 털보다도 더욱 가벼운 것이다.
    • 〈为人民服务〉(1944년 9월 8일)
  • 人民、只有人民,才是创造世界历史的动力。
    • 인민, 인민이 있어야만 세계 역사를 창조하는 동력이 생긴다.
    • 〈연합정부론〉(1945년 4월 24일)
  • 一切反动派都是纸老虎。看起来,反动派的样子是可怕的,但是实际上并没有什么了不起的力量。从长 远的观点看问题,真正强大的力量不是属于反动派,而是属于人民。
    • 모든 반동파는 모두 종이호랑이이다. 반동파의 모습이 무서워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무슨 대단한 힘은 결코 없다. 긴 안목으로 문제를 보면 진정 센 힘은 반동파가 가진 것이 아니라 인민이 갖고 있다.
    • 〈미국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과의 대화〉(1946년 8월)
  • “精兵简政”。讲话、演说、写文章和写决议案,都应当简明扼要。会议也不要开得太长。
    • ‘군대를 정예화하고 행정 기구를 간소화한다.’ 강연, 연설, 문장 쓰기와 결의안 쓰기는 모두 간단명료하게 해야 한다. 회의도 너무 길게 열지 말라.
    • 〈당위원회의 업무방법〉(1949년 3월 13일)
  • 今天,世界战争的危险和对中国的威胁主要来自美国的好战分子。他们侵占中国的台湾和台湾海峡,还想发动原子战争。我们有两条:第一,我们不要战争;第二,如果有人来侵略我们,我们就予以坚决回击。我们对共产党员和全国人民就是这样进行教育的。美国的原子讹诈,吓不倒中国人民。我国有六亿人口,有九百六十万平方公里的土地。美国那点原子弹,消灭不了中国人。即使美国的原子弹威力再大,投到中国来,把地球打穿了,把地球炸毁了,对于太阳系说来,还算是一件大事情,但对整个宇宙说来,也算不了什么。
    • 오늘날 세계전쟁의 위험과 중국에 대한 위협은 주로 미국의 호전광에서 나온다. 이들은 중국의 대만과 대만해협을 침공하고 원자전쟁도 벌이려 한다. 우리는 첫째, 우리는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만약 누군가가 우리를 침략한다면 단호히 반격할 것이다. 우리는 공산당원과 전 국민에게 이렇게 교육을 한다. 미국의 원자 공갈은 중국 인민을 놀라게 할 수 없다. 우리 나라는 인구가 6억 명이고, 960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이 있다. 미국의 그 정도의 원자탄으로는 중국인을 소멸시킬 수 없다. 미국의 원자탄 위력이 커서, 중국에 투하되어 지구를 뚫거나 지구를 폭파시키더라도, 태양계로서는 큰 일이지만 우주 전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 〈原子弹吓不倒中国人民〉 (1955년 1월)
  • 百花齐放、百家争鸣的方针,是促进艺术发展和科学进步的方针,是促进我国的社会主义文化繁荣的 方针。艺术上不同的形式和风格可以自由发展,科学上不同的学派可以自由争论。利用行政力量,强制推行 一种风格,一种学派,禁止另一种风格,另一种学派,我们认为会有害于艺术和科学的发展。艺术和科 学中的是非问题,应当通过艺术界科学界的自由讨论去解决,通过艺术和科学的实践去解决,而不应 当采取简单的方法去解决。
    •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방침은 예술 발전과 과학의 진보를 촉진시키는 방침이고, 중국의 사회주의 문 화예술을 촉진시키는 방침이다. 예술적으로 다른 형식과 풍격은 자유로이 발전해도 되고, 과학적으로 다른 학파가 자유로이 논쟁해도 된다. 행정력을 이용해 강제로 풍격 한 가지, 학파 한 갈래를 밀고 또 다른 풍격과 학파를 금지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예술과 과학의 발전에 유해할 수 있다고 여긴다. 예술과 과학 속의 시비문제는 반드시 예술계와 과학계의 자유 토론을 통해서 해결하고, 예술과 과학의 실천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간단한 방법을 갖고 해결해서는 안 된다.
    • 〈关于正确处理人民内部矛盾的问题〉(1957년 2월 27일)
  • 为了同敌人作斗争,我们在一个长时间内形成了一个概念,就是说,在战略上我们要藐视一切敌人,在战术上我们要重视一切敌人。
    • 적과 투쟁하기 위해,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에 한 가지 개념을 형성했다. 요컨대 전략 면에서 우리는 모든 적을 경시하고, 전술 면에서 우리는 모든 적을 중시해야 한다.
    • 〈각국 공산당과 노동당의 모스크바회의에서의 연설〉(1957년 11월 18일)
  • 美帝国主义九年来侵占了我国领土台湾,不久以前又派遣它的武装部队侵占了黎巴嫩。美国在全世界许 多国家建立了几百个军事基地。中国领土台湾、黎巴嫩以及所有美国在外国的军事基地,都是套在美帝国 主义脖子上的绞索。
    • 미국제국주의가 지난 9년 동안 중국의 영토 타이완을 점거했다. 얼마 전에 또 그것의 무장부대를 파 견해 레바논을 점거했다. 미국은 전 세계의 많은 나라에 군사기지 몇 백 군데를 건설했다. 중국 영토 타이완, 레바논과 외국에 있는 모든 미국의 군사기지는 다 미국제국주의의 목에 걸린 올가미이다.
    • 〈최고 국무회의에서의 연설〉(1958년 9월 8일)

대화[편집]

마오: 우리는 원자탄과 미사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재래전이든 핵전쟁이든, 어떠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 만일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에 대해 전쟁을 시작한다면, 아마 3억명 이상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전쟁은 전쟁이다. 세월은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아기들을 낳으며 일할 것이다.
안토닌 노보트니: 그래, 좋다. 당신네들은 3억이 죽어도 아기를 좀 더 낳으면 된다 치자. 우리는 1천 2백만명밖에 없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모두 다 죽을 것이다. 다시 시작할 사람들은 한 명도 남지 않을 것이다.

마오쩌둥에 대한 어록[편집]

  • 전적으로 문화 혁명의 기초가 되었던 마오쩌둥의 사고는 말 그대로 종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이 혁명 경험을 가져야 한다고 확신한 마오쩌둥은 젊은이들의 "자본주의 복원에 참여한 간부들, 중국의 흐루쇼프, 그리고 그러한 음모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비판을 방관했다. 이것은 이미 타락한 공산당 관료들을 타파하기 위한 꽤 강력한 혁명 속의 혁명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스무 살 시절의 꿈을 재발견한 마오쩌둥은 청년들이 오래된 것들을 파괴하고, 가족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도록 했다. 당시 한때 유행한 구호는 "모든 반란은 정당하다"였다. 이러한 호소에 움직여 봉기한 젊은이들은 사실상 몇 달 동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기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선언된 그러한 해방은 마오쩌둥에 대한 우상숭배라는 비인간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홍위병은 '마오의 광적인 신봉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오쩌둥 자신이 조성한 정치투쟁이라는 틀 속에서 마오쩌둥에 의해 조종되는 단순한 하수인들에 불과했다. 이 전투는 마오쩌둥 자신이 진정한 의미에서 결코 잃은 적이 없었던 권력을 되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는 무엇일까? 1962년 9월 당시 마오쩌둥은 자신의 몇 마디 말을 통해, 1961년 1월 이후 등장한 모든 대안에 대해 충분히 다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절대적이기를 바랐던 자신의 권력 보따리를 남에게 양도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거리낌 없는 반란을 호소했지만, 그러한 반란은 마오쩌둥 자신이 여러 가지 방어 수단을 통해 저지해왔으며, 또한 자신에 대한 우상숭배를 통해 피해 가려 했던 것이기도 했다. 목적과 수단이 심연처럼 갈라져 있었다. 이제 중국은 그 심연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 알랭 루, 《20세기 중국사》, 8. 유토피아의 제국: 1958~1976
  • 마오는 미국의 위협에 직면하여 공적으로는 당당한 태도를 취했으며, 사실상 스탈린의 경고들도 무시해 버렸다. 장제스가 모든 힘을 동원하여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전면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한 1946년 스탈린은 마오에게 장과 제휴하고 제2인자 역할을 맡으라고 권유했었다. 스탈린은, 저항하게 되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오랫동안 장에게 호감을 보여 왔었다. 씁쓸하긴 했지만 마오도 이 사실을 알았다. 스탈린은 심지어 장이 1927년 상하이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대량 학살을 할 때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고 적대시한 일이 있은 후에도 장을 지원했었다.
    스탈린이 상하이의 장제스를 지원하다 결국은 우한(武漢)의 공산주의자들과 좌파들을 지원하게 된 것은 정말 싫으면서도 마지못해 취한 조치였다. 1930년대의 통일전선 동안 스탈린은 장에게 비행기와 무기 그리고 군사 고문단―그들 중에는 1927년의 대량 학살 사태를 간발의 차이로 피한 사람도 일부 있었다―을 보내 주었다. 마오에게 그가 보낸 것은 오로지 비행기에 가득 실은 선전 삐라밖에 없었다. 히틀러가 1941년 6월 소련을 공격하자 스탈린은 마오에게 장과의 전쟁을 중단하고 동북구(東北區)의 일본군에 대해 자살적인 공격을 감행하라고 요청했다. 마오는 거절했다.
    마오는 스탈린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착각하지 않았다. 동시대의 한 소련 역사학자는 "스탈린은 두 중국 정책에 찬성했다"고 말한 바 있다. 스탈린은, 장은 약해서 모스크바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다.
    • 해리슨 E. 솔즈베리, 《새로운 황제들》(1993), 2. 향산의 시인
  • 마오의 마음은 철학적이고 시적이다. 그는 중국의 고전들을 보면 편안한 마음을 느꼈다. 그는 공자와 그의 제자 맹자를 알았으며, 명나라와 당나라,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왕조들이 경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통계를 지겨워했으며, 이러한 세부 사항들을 부하들에게 맡기고 싶어했다.
    대장정과 혁명 시기에 마오의 큰 힘은 대중운동의 효력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는 자기가 대중의 힘을 동원한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하나도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산을 옮긴 한 늙은이에 관한 그의 유명한 우화를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어마어마한 인구의 힘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다.
    • 해리슨 E. 솔즈베리, 《새로운 황제들》(1993), 14. 덩이 그의 최대사업을 붙들고 늘어지다
  • 마오는 '총체적인 해결'을 매우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변화의 수단으로서 철학을 신봉했고, 사회는 항상 안정기와 혼란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믿었다. 변화는 난(亂)의 상태에서 생기는 것이었다. 안정이란 정체(停滯)를 의미했다. 격동 속에서 진보는 이루어지고, 새롭고 유능한 인재와 사상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마오 연구가인 리쩌허우에 의하면, 마오는 전국시대의 역사를 읽은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평화로운 시절을 다룬 대목은 싫다. 혼란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평화의 시기는 사람들의 발전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을 참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마오가 내린 숙명적인 결정에 배경으로 작용했는지 여부는 결코 알 수 없다. 마오는 일기를 쓰지도 않았고 비서들이 그의 모든 생각을 다 알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마오가 장제스를 패배시키고 공산주의 기치 아래 중국을 통일시킨 자신의 역사적 공적을 자부하고 있었고, 문화혁명이라는 십자군은 그보다 더 위대한 사업이라고 믿고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생각하기에 문화혁명은 자신이 성취한 혁명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완성하기 위한 혁명이었다. 그는 오염과 불순함, 그리고 당 내부로부터의 배반에 의해 혁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혁명을 창조한 사람들이 그것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캉성의 독소를 지닌 말이 효력을 발휘했다. 마오가 생각하기에 이 새로운 캠페인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1949년의 인민공화국 건국보다도 위대한, 그의 마지막 업적이 될 것이었다. 이는 자신의 이름을 위대한 중국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황제 중의 황제로서 맨 첫머리에 올려놓게 만들 것이라고 마오는 확신했던 것이다.
    • 해리슨 E. 솔즈베리, 《새로운 황제들》(1993), 25. 독이 묻은 종이
  • 마오는 중난하이에 돌아온 이후로 갈수록 바깥세상과 동떨어져서 여러날 혹은 수주일에서 수개월씩 침대에 축 늘어져 있는 생활 속에 빠져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회의에 참석하고, 새로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지방 시찰을 하는 등 거의 광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마오의 비현실적이고 꿈 같은 사고방식이나 끝없이 날아가는 환상의 세계에서 확실히 아편 냄새가 났다. 문제는 마오의 이런 추상적 사변이나 환상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중국의 국내외 정책에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 해리슨 E. 솔즈베리, 《새로운 황제들》(1993), 32. 린뱌오의 그림자
  • 이 책은 20세기 위대한 혁명가이자 막강한 폭군이었던 인물에 관한 책이다. 그는 다음 두 가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나는 외세의 침략에서 나라를 해방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독재 수단을 통해 모든 이가 평등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첫 번째 임무를 성공했으나 두 번째 임무는 실패했다. 중국은 마침내 마오쩌둥이 통치하던 시절에 지정학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되고 정치적으로 양대 초강대국과 등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만과 폭력을 바탕으로 참을성 있는 중국 인민들에게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를 강요하고, 그들을 피비린내 나는 사회 실험의 나락으로 몰고 간 것 역시 마오쩌둥과 그가 이끈 공산당이었다. 그 결과 기아와 억압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 죽음에 이르렀다. 마오쩌둥은 국가를 통치하면서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라는 공자의 현명하고 인간적인 교훈을 따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오주의자들의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 알렉산더 판초프, 스티븐 레빈, 《마오쩌둥 평전》
  • 공산당 내에서 거의 매일 벌어지던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 속에서 한때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후난 성 출신의 열정적이고 젊은 지식인이었던 마오쩌둥은 점차 그 자신이 지닌 격정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계급 투쟁과 청산을 포함한 사회주의의 가설은 서로 부딪치도록 설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테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당내 반대파와 계급의 적, ‘착각에 빠진’ 동지에 대한 마오쩌둥의 투쟁은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감정의 잔재마저 모두 없애 버리고 말았다.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동지애가 아니라 증오와 보편적인 의혹이었다. 사랑, 선함, 충성, 신뢰는 그의 메마른 감정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며, 그의 삶은 키메라처럼 망상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는 결국 냉혈한 공산주의 독재자가 되었고, 권력의 정점에서 고독한 노인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몇 년 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접촉으로부터 점차 격리되면서 외롭고 병든 황제는 자신이 저지른 폭정의 결과를 맛보아야 했다.
    • 알렉산더 판초프, 스티븐 레빈, 《마오쩌둥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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