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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하이젠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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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하이젠베르크 (1933)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독일어: Werner Karl Heisenberg, 1901년 12월 5일 - 1976년 2월 1일)는 독일의 물리학자이다. 행렬역학과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하여 20세기 초 양자역학의 발전에 공헌을 한 인물이다.

《물리와 철학》(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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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조호근 옮김. (2018). 《물리와 철학》. 서커스. ISBN 9791187295105

  • 오늘날의 현대 물리학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제는 다름아닌 핵무기다. 핵무기가 현재 세계의 정치 구조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은 모두가 알고 있으며, 따라서 물리학의 전반적인 영향력 또한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정치적 영향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맞춰 세계의 정치 구조가 바뀌게 된다면, 현대 물리학의 영향력은 어떤 식으로 남게 될까?
    • 《물리와 철학》. 서커스. p.27

《부분과 전체》(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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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유영미 옮김. 김재영 감수. (2023). 《부분과 전체: 원자물리학을 둘러싼 대화들》. 서커스. ISBN 9791187295686

  • 과학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이런 자명한 사실은 잊어버리기 쉽다.
    • 《부분과 전체》. 서커스. p.7
  •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친구들과 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열 명에서 스무 명 정도의 친구들로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우리는 슈타른베르크 호수 서쪽 연안을 따라 구릉지를 걸었다. 환한 햇살을 받아 빛나는 울창한 너도밤나무 숲 사이로 빼꼼히 시야가 열리면 왼쪽 아래로 드넓은 슈타른베르크 호수가 아득하게 내려다 보였다. 나는 이 길에서 처음으로 원자의 세계에 대해 대화를 하게 되었고, 이 대화는 나중에 나의 과학 활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 《부분과 전체》. 서커스. p.11
  • 다시 이야기는 내가 학교 교과 외에 따로 수학 공부를 해왔다는 것과 바일의 책 "시간, 공간, 물질"을 공부했다는 이야기에 이르렀다. 조머펠트의 반응은 린데만과는 사뭇 달랐다.
    "하하, 아주 욕심이 많은 젊은이로군. 하지만 어려운 내용으로 시작한다고 쉬운 내용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건 아니라네. 그래, 상대성이론은 자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겠지. 현대 물리학은 다른 부분에서도 철학의 기본 입장들을 뒤흔드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네. 매우 흥미로운 인식들이 개진되고 있지. 하지만 그 길은 자네가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 더 멀다네. 그러니 자네는 일단 겸손하고 신중하게 전통적인 물리학부터 공부해나가야 할 걸세."
    • 《부분과 전체》. 서커스. p.38
  • 1922년 초여름 하인베르크 산기슭의 정원과 단독주택들이 어우러진 아늑한 소도시 괴팅겐은 알록달록 꽃이 만발한 숲들과 장미넝쿨, 화단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우리가 훗날 이때를 일컬었던 괴팅겐 '보어 축제'라는 명칭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첫 강의의 풍경은 내 뇌리 속에 지금까지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강의실은 꽉 들어찼고, 스칸디나비아인 특유의 체격을 갖춘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고개를 약간 삐딱하게 한 채 수줍게 웃으며 단상에 섰다.
    • 《부분과 전체》. 서커스. pp.75~76
  • 보어는 (중략) 토론이 끝난 뒤 내게 다가와 오후에 함께 하인베르크 산을 산책하며 내가 제기한 문제들을 더 상세하게 논의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이 산책은 이후 나의 과학에 너무나도 강력한 영향을 행사했다. 아니 나의 과학은 비로소 이 산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당할 것이다.
    • 《부분과 전체》. 서커스. p.77
  • "(하이젠베르크) 우리 독일인들은 이 전쟁(1차 대전)에서 많은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물론 반대편도 그랬고요. 전쟁에서는 많은 불의들이 저질러집니다. 이 일에 유일하게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세계사는 독일에게 유죄를 선언할 거라는 걸 압니다. 게다가 저는 어떤 정치가들이 어떤 부분에서 옳고 그른 결정을 했는지를 판단하기에는 너무 어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일의 인간적인 면과 관련된 질문들로 제 마음을 계속 불편하게 했던 질문들이죠. (중략) 저보다 몇 살 위로 친하게 지냈던 사촌은 오스나브뤼크에 살았는데 그 역시 군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자원해서 입대를 했는지, 징집을 당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커다란 결정은 내려졌고, 신체적으로 쓸 만한 사람은 전부 군인이 되었습니다. 제 사촌은 결코 전쟁을 원한다거나, 독일을 위한 정복 전쟁에 참전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중략) 하지만 그는 이제 자신이 생명을 걸고 참전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의 사촌이나 다른 모든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중략) 그 뒤 제 사촌은 프랑스에서 전사했습니다."
    • 《부분과 전체》. 서커스. pp.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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