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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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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사랑받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지금의 나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에리히 핀카스 프롬(독일어: Erich Pinchas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은 독일계 미국인 사회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인문주의 철학자이다. 프롬은 비판이론 영역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활동하였다.

《사랑의 기술》(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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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강주헌 옮김. (2026).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ISBN 9788931027068


  • 사랑은 기술인가? 그렇다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13. 〈사랑은 기술인가?〉


  • 대체로 우리는 사랑의 문제를 사랑받는 사람의 문제로 생각하지, 사랑하는 사람의 문제, 즉 사랑하는 사람의 능력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문제는 사랑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랑스러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된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14. 〈사랑은 기술인가?〉


  •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친밀감은 본연의 기적적인 면을 점차 잃어가고, 결국에는 상대에 대한 적대감과 실망감 및 권태가 초기의 흥분감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죽여버린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초기 단계에서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전혀 모른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18. 〈사랑은 기술인가?〉


  • 사랑의 경우에는 포기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요컨대 사랑이 실패한 원인을 살펴보고, 사랑의 의미를 꾸준히 연구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삶이 하나의 기술이듯이 사랑도 기술이라는 걸 깨닫는 것이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18. 〈사랑은 기술인가?〉


  • 사랑에 대한 이론이라면 어떤 경우에나 인간,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 실존에 대한 이론으로 시작해야 한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23. 〈사랑에 대한 이론〉


  • 인간은 이성을 선물로 받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생명체다. 인간은 자신과 동료, 자신의 과거 및 자신의 미래에 펼쳐질 가능성을 인식한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24. 〈사랑에 대한 이론〉


  • 사랑으로 재결합하지 못한 채 인간은 분리된 존재라는 인식이 수치심의 근원이고, 동시에 죄책감과 불안의 근원이기도 하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26. 〈사랑에 대한 이론〉


  • 공생적 합일과 달리, 성숙한 사랑은 본래의 모습, 즉 자신의 개성을 보존하며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내재한 능동적 힘이다. 우리를 동료 인간에게서 떼어놓는 벽을 허물고, 우리를 다른 사람과 하나로 맺어주는 힘이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41. 〈사랑에 대한 이론〉


  • 사랑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홀리는 것'이 아니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43. 〈사랑에 대한 이론〉


  • 어떤 여자가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녀가 꽃에 물을 주는 것을 잊는 게 자주 눈에 띈다면, 꽃을 ‘사랑’한다는 그녀의 말을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능동적인 관심이다. 이런 능동적인 관심이 결여된 곳에서는 사랑도 없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49. 〈사랑에 대한 이론〉


  • 나는 어머니의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나는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나는 아름답고 기특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나는 어머니에게 필요하므로 사랑받는다. 더 일반화해서 말하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사랑받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지금의 나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어머니에게 받은 이런 사랑은 수동적인 사랑이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p.67~68. 〈사랑에 대한 이론〉


  • 유아적 사랑이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라는 원칙을 따른다면,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라는 원칙을 따른다. 미성숙한 사랑은 "나에게 네가 필요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반면, 성숙한 사랑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나에게 필요한 거다"라고 말한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p.69~70. 〈사랑에 대한 이론〉


  • 우리 자신의 삶과 행복, 성장과 자유에 대한 확신은 사랑하는 능력, 즉 돌봄과 존중, 책임감과 지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어떤 사람이 생산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96. 〈사랑에 대한 이론〉


  • 이기심과 자기애는 동일하기는커녕 사실상 정반대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을 지나치게 많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적게 사랑한다. 오히려 자신을 증오한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97. 〈사랑에 대한 이론〉


  • 하지만 사랑이 성적 끌림의 결과라는 생각, 더 정확하게는 의식적인 감정에 반영된 성적 만족과 동일하다는 생각에 프로이트의 이론이 미친 영향을 과대평가한다면 실수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인과 관계의 흐름은 그 반대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138. 〈사랑의 붕괴와 현대 서구 사회〉


  • 현대인의 주된 목표는 자신의 능력과 지식, 자신과 '포장된 인격'을 다른 사람과 교환해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물론 그 다른 사람도 공정하게 교환해 이익을 남기려는 의도를 지닌 점에서는 같다. 현대인의 삶에는 끊임없이 전진하겠다는 목표 이외에 다른 목표는 없고, 공정한 교환이라는 원칙 이외에 어떤 원칙도 없으며, 소비를 통해 얻는 만족 이외에 어떤 만족도 없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157. 〈사랑의 붕괴와 현대 서구 사회〉


  • 사랑의 기술에 관련지어 말하면, 사랑의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하기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의 모든 단계에서 훈련, 집중, 인내를 실천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166. 〈사랑의 실천〉


  • 인내가 무엇인지 알려면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를 지켜보면 된다. 아기는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지만, 계속해서 시도하며 조금씩 나아진다. 그러고는 어느 날 넘어지지 않고 걷게 된다. 다 큰 어른이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추구하는 데 어린아이처럼 인내하고 집중한다면 무엇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171. 〈사랑의 실천〉

《소유냐 존재냐》(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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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차경아 옮김. (2020). 《소유냐 존재냐》. 까치. ISBN 9788972917038


  • 이 책은 나의 지난날 저술에서 두 가지 방향을 이어받고 있다. 우선, 근본적으로 휴머니즘에 입각한 정신분석 분야에서의 기존 작업을 확대하고 보완한 점과, 인간성격의 두 가지 기본 성향인 이기심과 이타심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점이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11. 〈머리말〉


  • 무궁한 발전에 대한 위대한 약속—자연의 지배, 물질적 풍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그리고 무제한적인 개인의 자유에 대한—은 산업시대 개막 이래로 여러 세대에 걸쳐서 희망과 믿음을 지탱해온 토대였다. 사실상 인간의 문명은 인간이 자연을 능동적으로 지배하면서 시작되었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13


  • 산업시대가 이룩했던 물질적 및 정신적인 눈부신 업적과 그것이 준 위대한 약속의 파장을 염두에 두어야만, 우리는 그 위대한 약속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오늘날 야기되는 정신적 충격을 이해할 수 있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14


  • 위대한 약속이 실현되지 못한 근거는 산업주의 체계에 내재한 경제적 모순들 이외에도 그 체계 자체가 지녔던 두 가지 중요한 심리학적 전제들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다시 말하면 최대치의 쾌락이라는 전제이다. 행복이라는 것을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소망 또는 주관적 욕구의 충족으로 이해한 점이다(극단적 쾌락주의). 둘째, 자기 중심주의, 이기심, 탐욕—체계의 존속을 촉진시키는 특성들—이 조화와 평화로 통하리라는 전제이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16


  •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겪는 불행으로 악명이 높다. 이를테면 고독과 불안에 시달리며, 의기저상해 있고, 파괴적이며, 의존적인—요컨대, 그들이 끊임없이 절약하려 드는 바로 그 시간을 성공적으로 "죽일 때" 쾌락을 맛보는 그런 사람들인 것이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20


  • 현재 우리는 쾌락(복지와 기쁨 같은 적극적 감정과는 대비되는 소극적 감정으로서의)이 과연 인간의 실존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최대의 사회적 실험을 벌이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소수 특권층뿐 아니라 적어도 산업국가에 사는 인구 절반이 그들이 추구하는 쾌락을 실제적으로 충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은 앞의 의문에 대해서 이미 부정적인 답을 내리고 있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21


  •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한 계급은 형성되기 마련이고 따라서 계급투쟁도, 세계적 시각에서 보면 국제적 전쟁도 불가피한 것이다. 소유욕과 평화는 서로 배척관계에 있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22


  • 소유적 실존양식, 재산과 이윤을 지향하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권력에의 욕구, 말하자면 권력에의 의존성을 낳는다. 지배하려는 상대 생명체의 저항을 깨부수기 위해서 나로서는 폭력이 불가피해지며, 나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앗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맞설 힘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사유재산을 가지려는 욕망은 노골적으로든 내심으로든 남의 것을 강탈하기 위해서 폭력을 쓰고 싶은 충동을 우리의 마음속에 부추긴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120


  • 소유는 사물과 관계하며, 사물이란 구체적이며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존재는 체험과 관계하며, 체험이란 원칙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물(persona), 우리 모두가 쓰고 있는 탈, 우리가 내세우는 자아이다. 인물 자체도 한낱 사물이기 때문이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128


  • 우리 인간은 존재하고자 하는, 뿌리 깊이 타고난 욕구를 지니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표출하려는 욕구, 활동하고자 하는 욕구,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 이기심의 감옥에서 빠져나가려는 욕구 등등.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147


  • 베풀고 나누고자 하는 욕구와 남을 위한 희생정신은 아직도 간호사, 의사, 수도사, 수녀 같은 특정한 사회적 직업종사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절대 다수는 아니더라도, 이런 직업인들 가운데에는 희생과 봉사라는 직업윤리를 입으로만 말하는 종사자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150


  • 존재적 실존양식은 오로지 지금, 여기(hic et nunc)에만 있다. 반면 소유적 실존양식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안에 있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184


  • 기계로 인해서 시간은 인간의 지배자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단지 휴식시간에만 약간의 선택의 여지가 주어진다. 그렇지만 대체로는 여가시간마저 노동시간과 마찬가지로 조직화된다. 또는 이와 정반대로 우리는 시간이라는 폭군에 대해서 완전히 나태한 상태로 반항하기도 한다. 시간의 요청을 전적으로 묵살하며 자유에의 망상을 길러낸다. 그러나 그것도 실제로는 시간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일시적인 탈출에 불과하다.
    • 《소유냐 존재냐》. 까치.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