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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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윤휴

윤휴(尹鑴, 1617년 10월 14일 ~ 1680년 5월 20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성리학자, 정치인으로, 남인(南人)의 거두이며, 청남의 중진이자 윤선도, 허목과 함께 예송 논쟁 당시 남인의 주요 논객이었다. 김덕민, 이민구(李敏求), 이원익(李元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오래도록 학문연구에 전념하다 학행(學行)으로 출사하여 시강원진선이 되었으며 이후 성균관사업, 사헌부대사헌 등을 거챠 이조판서, 의정부좌찬성에 이르렀다. 자(字)는 두괴(斗魁), 희중(希仲), 호는 백호(白湖), 하헌(夏軒).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어록[편집]

  •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은 무엇 있는가.[1]"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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