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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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편집]

《정치적인 것의 개념》[편집]

김효전, 정태호 옮김

  •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
    • 제 1장 국가와 정치
  • 정치적인 행동이나 동기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특정한 정치적 구별이란 동지의 구별이다.
    • 제 2장 정치적인 것의 규준으로서의 동지와 적의 구별
  • 정치적인 대립은 가장 강도 높고 극단적인 대립이다. 어떠한 구체적인 대립도 그것이 적과 동지의 편 가르기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점점 정치적인 것이 된다.
    • 제 3장 적대관계의 현상형태로서의 전쟁
  • 극단적인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모든 정치적 개념의 기초에, 이러한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을 드러낸다.
    • 제 3장 적대관계의 현상형태로서의 전쟁
  • 국가는 하나의 통일체이며 더구나 결정적인 통일체라는 것은 국가의 정치적인 성격에 근거를 둔다. 다원론은 사회적 단체들의 연합에 의해 통일체에 이르는 국가의 국가이론이거나, 아니면 단지 국가의 해체나 부정의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 제 4장 정치적 통일체로서의 국가와 다원론
  • 적과 동지의 구별이 사라지면, 정치생활도 없어진다. 정치적으로 실존하는 국민은 서약적인 선언에 의해서 이러한 숙명적인 구별을 피할 수는 없다.
    • 제 5장 전쟁과 적에 대한 결단
  • 어떤 국민이 정치적인 것의 영역에서 자신을 유치할 힘이나 의사를 잃는다고 해서 이 세계에서 정치적인 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약한 국민만이 사라질 뿐이다.
    • 제 5장 전쟁과 적에 대한 결단

슈미트 관련 어록[편집]

  • 슈미트의 중요성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이 어떤 일회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20세기의 수많은 전쟁과 다양한 법-정치적 변동들을 16세기 이래의 정치변동과 사상사 속에 자리배김함으로써 거시적이고 근원적인 성찰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슈미트를 읽는 까닭인 셈이다. 물론 그 성찰은 때론 불편하고 불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진리'나 '당위'를 그 개념의 발전사 속에서 상대화하고 재검토하는 깊은 통찰은 '적의 혜안'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 김항, 〈옮긴이 서문〉(2010), 칼 슈미트, 《정치신학》
  • 적과 동지의 구별은 결합 내지 분리, 연합 내지 분열의 가장 강도 높은 경우를 나타내며, 그 개념은 규범적인 대립이나 순수하게 정신적인 대립도 아니며 은유나 상징으로서 해석해서도 안 되며, 구체적·존재적인 의미에서 파악하는 것이다.…전쟁은 슈미트 정치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비상사태의 극치에 해당되는 것이며, '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하기 때문에 전쟁이 모든 것을 규정한다.…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슈미트의 개념 규정에 대해서는 일찍이 이 책의 발간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적과 동지에서 구하는 발상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며, 이미 사물논리적으로 내재하는 개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것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는 신채호(1880-1936)의 역사관에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 김효전, 〈옮긴이 서문〉(1992), 카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개념》
  • 나치에 협력했던 헌법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의 본질을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 찾았다. 정치적인 행동이나 동기의 연원은 결국 피아(彼我)의 구분이라는 말이다. 권력정치의 관점이다. 그러나 정치란 설득과 포용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치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 갈등을 최소화하고 관리하며 조정해 내는 것이 정치다. 권위주의 시대에 일상화되었던 정치적 배제는 탈정치에서 연유한다. 민주주의의 권력 원천은 투표다. 여당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한 원내대표를 몰아내려는 것은 또 다른 정치적 배제다. 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비판은 또 다른 삼권분립 시비를 불러올 수도 있다. 탈정치와 정치적 배제는 군사권위주의시대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대통령과 집권당 원내대표를 대척에 두고 논한다는 자체가 한국적 대통령제에서는 가당치 않다. 더구나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를 대립 각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한국정치에서는 비현실적이다. 메르스 정국에서 거부권 정국으로 쟁점 축 변경을 통한 국면전환이 진정한 승부수인지 무리수인지 권력정치적 관점에서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가, 적과 동지를 구별해서 그 적에 대한 ‘배제의 정치’를 하려는 것이라면 ‘승부수’와 ‘무리수’는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 최창렬, 〈‘배신의 정치’ ‘배제의 정치’〉, 한국일보, 2015.06.30
  • 칼 슈미트 등 일부 이데올로그들이 헤겔을 배격한 하나의 이유는 세습적 입헌군주정을 주장하는 헤겔의 논지가 히틀러의 평민출신성과 결정적으로 상치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큰 이유는 헤겔에 대한 칼 슈미트 같은 '정상급' 나치 이데올로그들의 컴플렉스였을 것이다. 이 점은 다음 절(節)에서 살펴보겠지만 칼 슈미트가 헤겔을 공개 배격하면서도 내용적으로 헤겔의 여러 논리를 훔쳐 쓰고 있는 점에서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 황태연, 《계몽의 기획: 근대정치사상 연구》(2004), p.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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