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하이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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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독일어: Martin Heidegger, 1889년 9월 26일 ~ 1976년 5월 26일)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책 《존재와 시간》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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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환경 문제를 초래한 본질적 원인은 모든 존재들을 객관화할 수 있고, 수량화할 수 있으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천연 자원으로 생각하는 사고 방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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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존재와 시간》
[편집]- 앞에서 언급된 [존재에 대한] 물음은 오늘날 망각 속에 묻혀버렸다. 비록 우리의 시대가 "형이상학"을 다시 긍정한 것을 자신의 공에 의한 진보로 치고는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새롭게 불을 당겨야 할 '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의 재개에서는 자신들이 면제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물음은 분명히 어떤 하나의 임의의 물음이 아니다. 그 물음은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를 숨가쁘게 몰아대며 연구를 하도록 만들었지만, 그후로는 [불행히도] 실제 탐구의 주제가 되는 물음으로서는 침묵 속에 빠져버리고 만다.
- 서론, 제1절 (이기상 옮김)
- 존재의 해석을 위한 그리스식 단초의 토대 위에서 다음과 같은 독단적인 경향이 형성되었다. 즉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불필요하다고 설명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그러한 물음을 소흘히 하는 것을 재가해주는 하나의 독단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존재'는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내용 없는 개념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개념으로서의 존재개념은 그것에 대한 그 어떠한 개념정의의 시도도 거부한다.
- 서론, 제1절 (이기상 옮김)
- 존재를 "전제함"은 존재에 대한 앞선 관점취득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것도 존재에 대한 관점에서부터 앞에 주어져 있는 존재자를 그 존재에 있어 잠정적으로 분류파악하는 식으로 그렇다. 존재에 대한 이러한 주도적인 관점취득은 우리가 항상 이미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바로 그 평균적인 존재이해에서 자라나온다. 그리고 그 존재이해가 결국에는 현존재 자신의 본질구성틀에 속한다. 이러한 "전제"는 거기에서부터 명제추론을 연역해내는 어떤 한 원칙의 정립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제기에는 도대체 "순환논증"이 놓여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물음의 대답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연역적인 근거제시가 아니라 근거를 밝게 파헤쳐 제시함이기 때문이다.
- 서론, 제2절 (이기상 옮김)
- 만약 모든 존재론들이 먼저 존재의 의미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또한 그러한 해명을 자신의 기초적인 과제로서 개념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들이 아무리 풍부하고 꽉 짜여진 범주체계를 구사하고 있다고 해도 그 근거에서 맹목적이고, 자신의 고유한 의도가 전도된 채로 남아 있다.
- 서론, 제3절 (이기상 옮김)
-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공허한 물음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안에는 그 물음이 그때마다의 현존재로서 고유하게 그리고 가장 날카롭게 개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존재"라는 근본개념을 획득하고 그것이 요구하는 존재론적인 개념의 틀 및 이것의 필연적인 이것의 필연적인 변형을 앞서 윤곽잡기 위해서는 하나의 구체적인 실마리가 필요하다.
- 서론, 제8절 (이기상 옮김)
- 현존재의 "본질"은 그의 실존에 있다.
- 제1편, 제9절 (이기상 옮김)
- 세계내부적 존재자에 대한 존재적 묘사도, 그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인 해석도 그 자체로는 "세계"의 현상을 적중시키지 못한다.
- 제1편, 제14절 (이기상 옮김)
- 기호는 다른 사물과 가리키는 연관에 놓여 있는 그런 사물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도구 전체를 두드러지게 둘러봄 안으로 부각시켜서 그와 동시에 손안의 것의 세계적합성이 자신을 알려오게 하는 하나의 도구이다.
- 제1편, 제17절 (이기상 옮김)
- 데카르트에 대한 고찰에서 통찰해야 할 점은, 얼핏 보아 자명한 세계의 사물들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은 추정상 가장 엄밀한 존재자에 대한 인식에 방향잡는 것과 같이 그 위에서 세계, 현존재 그리고 세계내부적인 존재자의 우선적인 존재론적 구성틀을 현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지반의 획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제1편, 제21절 (이기상 옮김)
- 일상적인 존재양식에서의 이 존재구성틀 자체가 우선 스스로를 빗나가게 하고 은폐하는 바로 그것이다.
- 제1편, 제27절 (이기상 옮김)
- 본래적인 자기 자신의 존재는 '그들'에서부터 분리된, 주체의 예외적 상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적인 실존범주의 하나로서의 '그들'의 실존적인 변양태의 하나이다.
- 제1편, 제27절 (이기상 옮김)
- 우리는 진리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존재 자신이 각기 나의 지금의 이 현존재로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듯이, 진리는 현존재의 열어밝혀져 있음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현존재가 본질적으로 세계 안에 내던져져 있다는 사실에 속한다. 현존재는 그가 "현존재" 안으로 오고자 하는가 않는가에 대해서 그 자신으로서 일찍이 자유로이 결단했는가, 또 각기 그에 대해서 결정할 수 있게 되겠는가? 왜 존재자가 발견되어 있어야 하며, 왜 진리와 현존재가 존재해야 하는지가 "그 자체로는" 통찰될 수 없다.
- 제1편, 제44절 (이기상 옮김)
- 현존재에게는 평균적인 일상성에서도 이러한 가장 고유한, 무연관적, 건너뛸 수 없는 존재가능이 문제가 되고 있다. 비록 오직 그의 실존의 극단적인 가능성을 거슬러서 방해받지 않은 무관심의 배려라는 양태에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제2편, 제51절 (이기상 옮김)
- 현존재의 본래적인 전체존재와 그 전체존재의 실존론적 구성틀에 대한 허공을 떠도는 물음은 그것이 현존재 자신에 의해서 증거된, 그의 존재의 가능한 본래성 안에 머무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시험에 합격한 현상적 지반 위로 올려지게 될 것이다.
- 제2편, 제53절 (이기상 옮김)
- 전체존재가능에 대한 물음은 일종의 현사실적-실존적 물음이다. 현존재는 그 물음에 결단을 내린 자로서 대답한다.
- 제2편, 제62절 (이기상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