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외관

한나 아렌트는 미국의 철학자이다.
어록
[편집]《인간의 조건》(1958년)
[편집]- 생각하는 일은 (…) 정치적 자유가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저명한 학자들이 보통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불행히도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훨씬 쉽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년)
[편집]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 정화열 해제. (2026).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한길사. ISBN 9788935679164
- 오늘날 아이히만에게 그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를 단순히 알지 못했거나 잊어버린 것이다. 아이히만은 이제 와서 "우리는 언제나 반대"한 척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사실상 그는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실행하는 데 매우 열심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그도 마운츠 교수처럼 "다른 통찰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아이히만은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고,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지구상의 모든 반유대주의자에게 경고하는 본보기로 공개적인 교수형을 당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말은 그가 무엇을 후회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후회는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p.116
- 1941년 가을에 시작되었던 절멸 프로그램은 말하자면 전혀 다른 두 경로로 진행되었다. 한 경로는 가스 공장이었고, 다른 경로는 이동학살부대였다. 군의 후방에서, 특히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이동학살부대의 작전은 유격전을 명분으로 정당화되었고, 그들의 희생자는 결코 유대인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진짜 파르티잔 외에도 러시아 관료, 집시, 반사회분자, 정신병자 그리고 유대인들을 처리했다. 유대인은 '잠정적인 적'에 포함되었는데, 불행히도 러시아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몇 달 뒤여서 그때는 그들이 도망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p.232
- 이 주제에 대한 많은 문헌은 '법'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다의적으로 쓰인다는 근거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한다. 이 맥락에서 '법'은 때로는 국가의 법(수립된 실정법)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모두의 마음 안에서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고 생각되는 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말하면, 불복종되는 명령은 '명백히 불법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불법성은 "'금지!'라는 경고가 쓰인 검은 깃발처럼 [그들의] 머리 위에 휘날려야 한다." 이는 판결문에서 지적한 것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p.288
- 간수들이 아이히만의 발목과 무릎을 묶었을 때, 그는 간수들에게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헐렁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은색 두건을 쓰겠냐고 물었을 때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완벽하게 자기 자신이었다. 아이히만의 마지막 말에 담긴 기괴한 어리석음보다 이를 더 설득력 있게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이히만은 자기가 신을 믿는 자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일반적인 나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잠시 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 나라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냈다. 교수대 아래에서 그의 기억력은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다. 그는 '의기양양'해져,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이 마지막 순간에, 아이히만은 인간의 사악함 가운데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pp.422~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