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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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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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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독일어: Hermann Hesse, 1877년 7월 2일 - 1962년 8월 9일)는 독일계 스위스인, 시인, 소설가, 화가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양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작가 활동을 시작한 뒤에는 인간 내면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창작하여 독일 문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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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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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의 본문은 데미안입니다.

헤르만 헤세. 안인희 번역. (2013). 《데미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 《데미안》. 문학동네. p.7
  •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면 자기들이 신이라도 되는 양, 그래서 그 어떤 인간의 이야기를 완전히 꿰뚤어보고 파악할 수 있기라도 하는 듯, 마치 신이 직접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라도 하는 듯 언제 어디나 가리는 것 없이 시원하게 묘사하곤 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작가들도 물론 그렇게는 못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이상으로 내게는 내 이야기가 중요하다. 이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데미안》. 문학동네. p.7
  • 인간은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고 넘어간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것은 자기 삶의 요구와 주변세계가 가장 심하게 갈등하는 지점,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장 힘들게 쟁취해야 하는 삶의 지점이다. 어린 시절이 물러지면서 천천히 붕괴하는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일생에 단 한 번, 우리의 운명인 죽음과 재탄생을 경험한다.
    • 《데미안》. 문학동네. p.61
  •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데미안》. 문학동네. p.110
  • 사랑은 두 가지 모두였다. 두 가지 모두이면서 동시에 그 이상이었다. 사랑은 천사의 모습이며 악마이고, 하나가 된 남자이며 여자이고, 인간이며 동물이고, 최고의 선이며 극단적인 악이었다. 이를 겪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었고, 이를 맛보는 것이 내 운명이었다. 나는 운명을 향해 동경과 공포를 품었지만, 운명은 언제나 거기 있었고, 언제나 내 위에 있었다.
    • 《데미안》. 문학동네. p.114
  •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면 자주 자부심에 넘치고 오만했지만, 또 그만큼 자주 기가 죽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이따금 나 자산이 천재 같다가도 이따금은 절반쯤 미친 것 같았다. 또래 친구들의 기쁨과 삶을 함께 누리는 일이 내게는 잘되지 않았다. 내가 희망 없이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아서, 삶이 내게는 닫혀 있는 것만 같아서 때때로 스스로를 비난과 근심으로 괴롭혔다.
    • 《데미안》. 문학동네. p.131

《싯다르타》(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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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의 본문은 싯다르타 (소설)입니다.

헤르만 헤세. 권혁준 번역. (2025). 《싯다르타》. 문학동네.

  • 집의 그늘진 곳에서, 나룻배들이 떠 있는 강가의 햇살 속에서, 사라수 숲의 응달에서, 보리수 그늘 아래서, 브라만의 수려한 아들이자 어린 매 같은 싯다르타는 역시 브라만의 아들인 친구 고빈다와 함께 자랐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1
  • 싯다르타의 마음에서 불만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중략)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들을 부르는 것은 훌륭한 일이었다-하지만 그것이 전부란 말인가? 제사를 드리는 일이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그게 신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세계를 창조한 이가 정말 프라야파티일까? 유일자이자 단독자인 아트만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아닐까? 신들도 너와 나처럼 시간에 예속된 존재, 무상한 피조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이 훌륭하고 올바르고 의미 있고 최상의 가치를 지닌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그분, 유일자인 아트만 외에 대체 어떤 존재에게 제사를 드리고 경배를 올려야 한다는 말인가? 아트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분은 어디에 있는가? 그분의 영원한 심장이 각자의 자아,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불멸의 핵에서 고동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서 고동친다는 말인가? 이 자아, 가장 내적인 부분, 가장 궁극적인 부분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 《싯다르타》. 문학동네. pp.14~15
  • "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지혜란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따를 수도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 그러나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