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라드브루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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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 1878년 11월 21일 뤼벡 - 1949년 11월 23일 하이델베르크)는 신칸트파의 서남학파에 속하는 독일의 형법·법철학자. 바이마르 공화국 법무장관이였고,쾨니히스베르크대학·킬대학·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를 지냈다.

어록[편집]

  • 확실히, 인간의 불완전성은 법률에서 항상 법의 세 가지 가치, 즉 공동필요(Gemeinnutz), 법적 안정성(rechtssicherheit), 정의(Gerechtigkeit)를 조화롭게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5분간의 법철학〉 (최종고 역)
  • 그러므로 모든 법적 문언(Satzung)보다도 더 강력한 법원칙들(Rechtsgroundsätze)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이것들에 위배되는 법률은 효력이 공허한 것이다.
    • 〈5분간의 법철학〉 (최종고 역)
  • 실증주의는 실제로 “법률은 법률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독일의 법률가 계급을 자의적이고도 범죄적인 내용을 가진 법률에 대하여 속수무책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실증주의는 자신의 힘으로 법률의 효력을 기초놓을 처지에 있지 못하다. 그것은 한 법률이 자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실력만 갖고 있으면 이에 효력이 증명된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실력 위에서는 어쩌면 필연(Müssen)은 기초놓아질지언정 결코 당위(Sollen)와 효력(Gelten)은 기초놓아질 수 없다. 당위와 효력은 오히려 법률 속에 내재하는 가치 위에서만 기초될 수 있다. 물론, 하나의 가치를 모든 실정법률은 내용에 관계없이 표시하고 있다. 그것은 적어도 법적 안정성(Rechssicherheit)에로 인도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무법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은 법이 실현해야 할 유일한 가치이거나 결정적인 가치는 아니다. 법적 안정성 외에 오히려 두 가지 다른 가치, 즉 합목적성(Zweckmäßigkeit)과 정의(Gerechtigkeit)가 등장하는 것이다.
    •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 (최종고 역)

《법철학》[편집]

  • 상대주의에 대하여는 저자는 현재 본서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보다도 훨씬 큰 의의를 인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상대주의는 민주주의의 사상적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와 동일시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다수를 획득할 수 있는 어떠한 정치적 견해에도 국가의 지도적 지위를 위임할 용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민주주의는 여러 정치적 세계관의 어느 것이 정당한가를 판별할 명백한 규준을 알지 못하며, 여러 정당들 위에 하나의 입장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주의는 어떤 정치적 견해도 입증할 수 없고 또 반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이론을 가짐으로써, 우리에게 정치적 투쟁이 벌어질 경우 상대방을 바보 또는 악의의 골수분자처럼 보는 독선주의를 막는 데에 적합한 것이다.
    • 저자 서문 (최종고 역)
  • 법은 인간의 작품이며, 따라서 모든 인간작품과 마찬가지로 그 이념으로부터만 이해될 수 있다.
    • 제1장 현실과 가치 (최종고 역)
  • 법은 가치관계적 태도의 범위 안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법은 문화현상, 즉 가치에 관계된 사실이다. 법개념은 법이념을 실현한다고 하는 의미를 가진 소여로 밖에 규정될 수 없다.
    • 제1장 현실과 가치 (최종고 역)
  • 이리하여 법에 대한 세 가지의 가능한 고찰이 얻어졌다. 가치관계적 고찰, 즉 법을 문화사실로서 고찰하는 것―이것은 법과학(Rechswissenschaft)의 본질을 이룬다― 및 가치평가적 고찰, 즉 법을 문화가치로서 고찰하는 것―이것에 의하여 법철학(Rechtsphilosophie)이 특징지워진다― 마지막으로 법의 가치초월적 고찰, 즉 법의 본질 또는 무본질성을 고찰하는 것―이것의 법의 종교철학(Religionsphilosophie des Rechts)의 과제이다―의 셋이 그것이다.
    • 제1장 현실과 가치 (최종고 역)
  • 발전의 어떤 방향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는 그 목표의 정당성, '흐름에 거슬러는 수영'의 부정당성은 아직 증명되지 않는다. 불가피한 것은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이미 노력하여 구할만한 가치있는 것은 아니며,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바르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 제2장 법의 가치고찰로서의 법철학 (최종고 역)
  • 가치고찰과 존재고찰은 독립된, 전혀 자신 속에 폐쇄된 원으로서 병존한다. 이것이 방법이원론(Methodendualismus)의 본질이다.
    • 제2장 법의 가치고찰로서의 법철학 (최종고 역)
  • 법철학이 한편으로 정신의 영역에 옮겨진 정치적 당파싸움이라면, 또 한편으로 정치적 당파싸움은 동시에 대규모의 법철학적 논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큰 정치적 전환은 법철학에 의하여 준비되었든가 아니면 수반되었다. 처음에 법철학이 있었고 나중에 혁명이 있었다.
    • 제2장 법의 가치고찰로서의 법철학 (최종고 역)
  • 당위명제는 다른 당위명제에 의하여서만 성립될 수 있고 증명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마지막 당위명제는 입증할 수 없으며 공리와 같이 인식(Erkenntnis)할 수 없고 다만 고백(Bekenntnis)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당위명제에 관한 서로 대립하는 주장, 즉 서로 대립하는 가치관 및 세계관이 각각 싸우며 대치되어 있을 때, 더 이상 그것들을 과학적 일회성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적 가치고찰은 참으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를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줄 수는 없다.
    • 제2장 법의 가치고찰로서의 법철학 (최종고 역)
  • 분명한 것은 상대주의적 법철학은 서로 대립하는 궁극적 전제들로부터 체계적으로 발전된 여러 법률관들 사이의 선택을 각 개인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개인에게 태도결정의 가능성 전부를 제시하는 데 자기의 임무를 한정시키며, 각 개인의 태도결정 자체는 그의 인격의 깊은 곳―결코 그의 자의(Belieben)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양심(Gewissen)―에서 형성된 결단에 위임된다. 그것은 궁극적 자의판단에 관하여는 하나의 무지(Ignorabimus)를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와 같이 자기제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지하다는 것만이 요청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언젠가는 과학적 일의성을 가지고 가능한 여러 세계관 속에서 하나를 결정할 능력을 가진 천재를 위하여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것만으로는 적어도 유용한 준비작업을 한 것으로 생각하여 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이다.
    • 제2장 법의 가치고찰로서의 법철학 (최종고 역)
  • 여기에 이야기한 방법을 상대주의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그것은 하나 하나의 가치판단의 정당성을 일정한 최고의 가치판단의 관계에서만, 즉 일정한 가치관 및 세계관의 범위 안에서만 확정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지, 이와 같은 가치판단, 가치관 및 세계관 자체의 정당성을 확정하는 것을 그 임무로 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주의는 이론이성에 속하는 것이지 실천이성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궁극적 결정에 대한 과학적 기초의 단념을 의미하는 것이지, 태도결정 그 자체의 단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대주의는 이론이성과 함께 실천이성도 침묵하고 있는(진리가 무엇이냐?) 복음서의 빌라도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이론이성의 침묵이 곧 실천이성에의 가장 강한 호소인 렛싱(Lessing)의 나탄(Nathan)("너희들 다 같이 내기하자. 손가락 반지의 보석의 힘을 나타내기 위하여."에 오히려 가깝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상대주의는 다양한 세계관의 기초를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주의가 자기의 입장을 취하지 않고 가치판단을 하는 궁극의 여러 입장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칠 때, 그리고 그것이 모든 입장의 정당성을 일제히 의심할 때, 그것은 빌라도의 회의주의(Skeptizismus)이다. 또 그 여러 입장 가운데 하나의 정당성을 확신하더라도 다만 그것을 증명할 수 없을 때, 그것은 나탄의 불가지론(Agnostizismus)이다.
    • 제2장 법의 가치고찰로서의 법철학 (최종고 역)
  • 자연법에 대하여 결정적 타격을 준 것은 법사나 비교법이 아니라 인식론이며, 역사학파가 아니라 비판철학이며, 사비니(F. Savigny)가 아니라 칸트(I. Kant)였다. 칸트의 이성비판은 이성은 완결된 이론적 인식, 어디에도 적용되는 윤리적·심미적 규범을 담고 있는 병기고(兵器庫)가 아니라 오히려 단지 그러한 인식과 규범에 도달하는 능력에 지나지 않으며, 해답이 아니라 문제의 총체이고, 사람이 소여를 취급하는 관점의 총체이며, 주어진 재료에 적용되어 비로소 일정한 내용의 판단 혹은 평가를 내리는 범주의 총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내용의 일정한 인식 혹은 평가는 결코 '순수'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항상 일정한 소여에 대하여 이성을 적용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이 아니라 항상 이들의 소여에 대하여서만 타당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법, 즉 올바른 법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는 보편타당성이 주어지지만 그 해답은 각각 주어진 사회상태에만, 즉 특정한 시대와 민족에만 타당성을 가지는 것이다.
    • 제3장 법철학의 경향들 (최종고 역)
  • 정치적 창조마저도 역사적으로 제약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그 요구가 행동하고 있는 인간존재에게 규범으로 적용될 때 역사 자체를 정지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무릇 모든 역사주의의 오류는 그것이 역사적 인식의 범주를 정치적 행동의 규범에까지 승격시키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 제3장 법철학의 경향들 (최종고 역)
  • 역사학파에 있어서 현실과 가치의 동일시가 역사를 완전히 지배하는 신비로운 신의 의지에 대한 신앙에 입각하고 있다면 헤겔에게서 그 동일시는 역사적 과정 속에 실현되는 이성의 자기전개의 변증법적 재구성에 입각하고 있다. 즉,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이성이 민족정신에, 합리주의가 비합리주의 및 낭만주의에 대립한다. 이 실질적 대립은 헤겔주의와 역사학파 사이의 예리한 개인적 논쟁 속에도 표현되었다.
    • 제3장 법철학의 경향들 (최종고 역)
  • 사회주의자가 사회주의를 긍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불가피하게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의 사회상태를 부정의·착취·압제라고 느끼면서 한편으로 사회주의적인 사회질서를 정의의 요청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진실로 진단일 뿐만 아니라 표어이며, 예언일 뿐만 아니라 계획이며, 숙명론이 아니라 정치론이다.
    • 제3장 법철학의 경향들 (최종고 역)
  • 순전히 경험론적인 일반법학은, 만일 그 속에서 근절할 수 없는 철학적 충동이 거의 의사에 반하여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법철학의 안락사(die Euthanasie der Rechtsphilosophie)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 제3장 법철학의 경향들 (최종고 역)
  • 일반법학은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링은 이미 결정적으로 실증주의를 넘어섰기 때문에 실증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평가될 수가 없다. 그의 가슴 속에는 지금까지 설명된 모든 사고의 주제가 공존하여 서로 교섭을 행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우리가 경험한 법철학의 재생과 법학의 방법개선이 나타났던 것이다.
    • 제3장 법철학의 경향들 (최종고 역)
  • 위대한 시대에는 삶에 봉사하는 것이 항상 법철학의 과제였고, 예컨대 법철학이 위대한 정치적 운동에 대하여 그 목표를 설정해주고 해명해주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그 때문에 법철학을 그 고유의 방법으로 연구하는 속박된 영역에서 해방시켜 확고부동한 가치판단으로 충만된 체계에 도달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확실히 어떠한 법철학도 형식적 성격을 가지는 것만이 보편타당하게 인식된다고 하는 칸트에 의하여 기초되고 슈탐러에 의하여 새롭게 확립된 통찰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법철학이 방법뿐만 아니라 체계까지 바라는 것이라면 법철학에는 체계의 보편타당성을 단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법철학이 개개의 체계의 자리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면 여러 체계 사이에 자기입장을 취함이 없이 이들 체계의 체계를 전개하는 이외에 선택의 길은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법철학적 상대주의(Relativismus)의 과제이다.
    • 제3장 법철학의 경향들 (최종고 역)
  • 허고많은 소리, 허고많은 말이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예리한 눈은 있지만 섬세한 감각의 섬광, 즉 사람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하는 사물의 밑바닥까지 통찰하는 눈은 드물다. 그리고 단순히 자기 자신을 보충하는 도장을 누르는 고전적 소박성을 가진 것은 가장 드물다.
    • 제3장 법철학의 경향들 (최종고 역)
  • 법의 개념은 하나의 문화개념이다. 즉, 그것은 가치에 관계된 현실, 가치에 봉사한다는 의미를 가진 현실에 관한 개념이다. 법은 법가치, 법이념에 봉사한다는 의미를 가진 현실(die Wicklichkeit, die den Sinn hat, der Rechtsidee zu dienen)이다. 그래서 법개념은 법이념에 의하여 정립된다.
    • 제4장 법의 개념 (최종고 역)
  • 정의는 온전한 법원리가 아니라 아마도 법의 개념규정에 표준을 주는 특수한 법원리이다. 즉, 법은 정의에 봉사한다는 의미를 가진 현실이다.
    • 제4장 법의 개념 (최종고 역)
  • 형평은 개개의 경우의 정의이며, 형평을 고려한다고 하여 법은 정의에 봉사하려는 의미를 가진 현실이라는 우리의 공식에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 제4장 법의 개념 (최종고 역)
  • 도덕은 여기에서 다른 입법에 복종하고 다른 이성영역의 특한 변증법에 의탁하고, 다른 규범영역에서 비로소 확정될 의무내용을, 말하자면 백지수표의 싸인에 의하여 승인한다. 그것은 법과 정의에다 도덕적 과제의 도장을 누르지만, 그 내용의 확정은 도덕 이외의 입법에 위임하는 것이다.
    • 제5장 법과 도덕 (최종고 역)
  • 도덕과 법의 관계는 풍부한 긴장관계로서 나타난다. 법은 무엇보다도 항상 수단이 목적에 대하여 그러하듯, 도덕에 대하여 엄격히 상이하게 구별되는 것, 나아가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런 후에 비로소 도덕적 가치실현의 수단으로서 그 목적의 가치성에 참가하고, 그 자기법칙성을 유보하는 도덕 속에 수용되는 것이다.
    • 제5장 법과 도덕 (최종고 역)
  • 법과 관습(Sitte)을 개념적으로 구별하려고 하는 시도들은 지금까지 항상 실패로 돌아갔다. 법은 만들어진 것, 관습은 생성된 것으로 파악한다면, 이 견해는 관습법을 가리킴으로써 반박되어질 수 있다. 또 법은 강제가능한 것, 관습은 자유의사에 의하여만 이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이에 대하여는 한편으로 많은 법의무, 즉 국제법적 의무와 최고국가기관의 국가법적 의무(지키는 자를 지킬 자는 누구냐?; quis custodeit custodes?) 뿐만 아니라 개인의 법당사자의 허다한 의무(예컨대 독일민사소송법 제888조 2항)도 강제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 다른 한편으로 법이 효력을 갖기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저 심리적 성질의 강제는, 예컨대 음식점의 식사에 있어서 반드시 "술을 주문하지 않으면 안된다"(Weinzwang)고 하는 관습과 "사지 않아도 마음대로 볼 수 있다"(Besichtigung ohne Kaufzwang)고 하는 광고문이 증명해 주듯 법과 다를 바 없는 관습의 속성이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었다.
    • 제6장 법과 관습 (최종고 역)
  • 관습은 법이나 도덕에 대하여 체계적 관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관계에 선다. 관습은 법과 도덕이 아직 미발전, 미분화의 상태에 포함되어 있는 양자에 공통의 전형태(Vorform)이며, '법과 인륜의 형태를 각각 다른 방향으로 출발시키는 미분화 상태'(Indifferenzzustand)(게오로크 짐멜, Georg Simmel)이다.
    • 제6장 법과 관습 (최종고 역)
  • 정의는 진실로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그 상이에 따라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을 명령하지만, 누가 같은 것, 혹은 다른 것이라고 인정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취급되어야 하는가 하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정의는 다만 법의 형식만을 규정한다. 법의 내용을 획득하기 위하여는 두 번째 사상이 부가되지 않으면 아니된다. 합목적성(Wzeckmässigkeit)이 그것이다. 정의의 문제가 모든 합목적성의 문제에서 독립하여, 그래서 국가목적에서도 독립하여 제출되고 해당되지 않으면 안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법의 목적에 관한 문제 영역에서는 국가가 맨먼저 우리의 고찰의 시야 속에 들어온다. 법은 그 본질적 부분에서 국가의 의사이고, 국가는 그 본질적 부분에서 법적 제도이다. 그러므로, 법의 목적과 국가의 목적에 관한 문제는 서로 나눌 수 없는 것이다.
    • 제7장 법의 목적 (최종고 역)
  • 법은 공동생활의 질서이기 때문에 각 개인 의견의 다양성에 내맡겨질 수 없으며, 모든 사람 위에 위치하는 하나의 질서로 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리하여 법에 대하여 위의 두 요소와 대등한 세 번째 요구, 즉 법이념의 제3의 요구가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법적 안정성(Rechtssicherheit)이다. 법의 안정성은 법의 실정성을 요구한다.
    • 제9장 법이념의 상호모순 (최종고 역)
  • 정의와 합목적성은 서로 반대되는 요구를 제기한다. 정의란 평등이며, 법의 평등은 법규의 일반성을 요구한다. 정의는 어느 정도까지 일반화한다. 그러나 평등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이란 항상 현존하는 차이를 일정한 관점 아래서 사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편 합목적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차이 자체가 본질적이다. 합목적성은 가능한 한 개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정의와 합목적성은 서로 모순관계에 있다.
    • 제9장 법이념의 상호모순 (최종고 역)
  • 우리는 모순을 지적했을 뿐 이것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철학 체계의 결함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은 사람을 결단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결단에 직면하게 한다. 철학은 인생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철학의 체계는 벽돌이 서로 다른 벽돌을 떠밀어냄으로써 모두 유지해나가는 고딕식 돔(Dom)과 비슷한 것이다.
    • 제9장 법이념의 상호모순 (최종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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