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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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숙(許貞淑, 1902년 7월 16일 ~ 1991년 6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며 여성운동가, 사회주의자이다. 1924년 5월 사회주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조직했고,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으로 수가이(秀嘉伊)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여성해방은 경제적 독립이 근본' 등 여성문제이론에 대한 각종 논설을 발표했다. 1925년 1월 경성여자청년동맹을 결성했다. 1926년 미국 유학 후, 귀국 1927년 근우회 조직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 경성지회 간부, 근우회 중앙회 상무위원, 서무부장, 출판부장 등으로 활동했다.

1929년 11월의 광주학생시위사건이 1930년초 경성지방 학생시위운동으로 확산되자 그녀는 제2차 경성지역 여학생시위 운동을 주도하여 감옥생활을 했다. 출옥 후 1934년 중국으로 망명, 조선민족혁명당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1938년 화북으로 가 조선독립동맹, 조선의용군에서 활동하며 항일전쟁에 참여했다.

1945년 광복후 서울로 귀국했다가 월북,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부장, 1948년 3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을 거쳐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 1948년 8월 북조선 단정에 참여,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9월 문화선전상이 되고, 1949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 1957년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위원장, 사법상, 1959년 최고재판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1960년대 숙청되었다가 1970년대 이후 북한 정계에 복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서기국장, 최고인민회의 6~8기 대의원 등을 역임했다.

어록[편집]

  • "성적 만족을 위해서라면 정신적인 사랑 없이 육체적 결합이 가능하다.[1]"
'연애 유희론' 중에서
  • "성적 해방과 경제적 해방이 극히 적은 조선여성에게 사회가 일방적으로 수절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의 본능을 무시하는 허위[2]"
  •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자인 남성에게 노예가 되었고, 성적으로 남편에게 구속을 받고 있는 이중의 쇠사슬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2]"
부인의 지위가 열악한 이유에 대한 시각
  • "그것(단발)은 모두 필요에 의한 것일 뿐, 특별하게 겉모습에 신경 쓴 것이 아니다.[3] (머리 감는데) 시간도 절약되고 위생적이므로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단발을 단행했으나 여성운동을 해나가면서 일반 여성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사회적 필요에 의해 도로 머리를 기르게 되었다.[4]"
최초의 단발 후, 다시 머리를 기르면서
  • "여자가 남자로부터 해방되려면 경제력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 "우리는 남의 아내와 남의 며느리가 되어가지고 한갓 그 집안 시부모와 그 남편 한사람만을 지극히 정성으로 받들고 공경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사람으로서의 우리의 개성을 살리우고 우리의 인권을 차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눈앞에 급박한 큰 문제이다. 만일에 우리가 사람에게 의뢰하여 사는 기생충이 아니고 완전한 사람이며 한 세상의 인간살이가 남을 위함이 아니고 오직 나를 위함이라 하면 우리는 먼저 남과 같이 완전히 자유롭게 살 것을 요구할 것이며 노력할 것이다.[5]"
  • "조선의 여자 교육의 시설과 그 방침이 저질이요 수구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더욱 기독교측 설립의 학교교육의 시설과 그 방침이야말로 무던히도 한우님의 명령대로 복종한다면 (생략) 조선여학교 중 그 시설과 방침이 무리에서 떨어지고, 시대에 뒤쳐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피교육자에게 강제로 예수를 주입하여 사람(여성)이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도 통분한 일이다. 정체를 알 수 없고 과학이 버리는 신의 노예를 만들 양으로 하는 것이라던지, 그 학교학생으로서 성실한 신자가 아니면 선생의 귀애(貴愛)와 친절한 지도 보담은 일종의 이단자로 취급하는 행동과 심사는 가증하기가 끝이 없다. 대체 제군들의 조선여자교육의 본의가 거대한 신도 명부 작성에 있느냐, 현실살이 사람 교육에 있느냐"
"착오된 교육방침" 《신여성 1925년 11월호》 29쪽, 일제시대 조선 교육의 낙후성, 여성 교육의 낙후성을 지적하며
  •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여자들은 남자와 집안의 부속물, 정략결혼의 거래물, 남자의 재산에 불과하였다. 여자의 권리는 여자 스스로 찾아야 된다."
  • “우리는 종교인들의 신행생활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미국놈을 하느님처럼 숭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을 바에야 조선의 하느님을 믿어야지…․[6]
  • “우리는 그가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그가 지니고 있는 애국심의 깊이와 건국 사업에 어떻게 나서고 있는가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종교를 믿는다고 덮어놓고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멀리하며 차별대우를 해서는 안 됩니다.[6]
  •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인식하고 자신의 인간적 권위를 확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인간다워 질 수 있다.[7]"
  • "(전근대적인 억압 속에 묶여있던) 조선 여성들의 감정을 북돋우자.[7]"
  • "우월권을 가진 남성으로부터 인격을 유린당하는 것은 신여성이나 구여성이나 마찬가지다.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싸우는 여성은 가사를 돌볼 수 없거나, 가사를 돌보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 없게 되는 자가당착에 빠지지만 여성의 진정한 해방, 이성간의 사랑, 생활의 안정, 가정의 문제, 직업과 일에서 여성이 갖는 근본적 고통을 해결할 열쇠가 필요하다.[8]"
  • "여자라는 이유로 특혜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남자들과 같은 환경, 같은 조건에서 일해야 된다"
  • "많은 여성들이 아직도 봉건적 가부장제 아래에서 '가정노예'로 신음하고 있다."
  • "이중노예를 만드는 우리의 환경에 반역하자![2]"
봉건적 가부장제 아래에서 `가정노예'로 신음하고 있는 다수의 농촌 여성들에 대해
  • "지나간 날의 미지근한 감정을 내어버리고 정열 있고 예민한 감정의 주인공의 되어 자기 개성을 살릴 줄 아는 여성이 되자.[7]"
  • "조선여성은 인류의 역사 중에서 가장 가혹한 역사를 가진 인간일 것이다. 구미 각국의 여성은 문명의 혜택과 교육이 고등한 까닭으로... 남녀가 대등한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의 여성은 고루한 관습과 제도의 영향으로 전무교육상태에 있고, 현재 조선여성의 대다수가 무교육자인 가정부인이며 대부분이 경제상으로 무산계급에 속한 여성이다. 조선여성에게는 개성의 자유나 인격의 대등은 아직 발생되지 아니하였다.[7]"

외부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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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편집]

  1. [근대의 풍경 20선]<15>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동아일보 2008.09.17
  2. 2.0 2.1 2.2 금욕·순정…전통적 여성성 반기 한겨레신문 2002.01.28
  3. 이상경, 《한국근대여성문학사론》 (소명출판, 2002) 99페이지
  4. 이상경, 《한국근대여성문학사론》 (소명출판, 2002) 100페이지
  5. 동아일보 1924년 11월 3일자 4면
  6. 6.0 6.1 대한불교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 《한반도 평화ㆍ통일문제와 한국불교》(대한불교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 2011) 22페이지
  7. 7.0 7.1 7.2 7.3 [한국의 여성운동가들-4] 허정숙 "계급해방"과 "여성해방" 사이에서
  8. [학술] 근대 속으로 시간여행을… 한겨레 21 2003.11.20 제4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