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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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김근태(金槿泰, 1947년 2월 14일 ~ 2011년 12월 30일)는 대한민국정치인이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태어나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역임하였다.

확인된 것[편집]

  • 김근태의 마지막 블로그 포스팅
    • 2012년을-점령하라. 김근태 블로그. “2012년에 두번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참여하는 사람들 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고문 사건[편집]

  • 1985년 [2월 19일 서울형사지방법원 118호 법정 서울형사지법 합의 11부(재판장 서성, 배석 김희근, 여상훈) 심리에서 김근태의 진술

본인은 1985년 9월 한 달 동안,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 5시간 정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을 주로 하고 물고문은 전기고문으로 발생하는 쇼크를 완화하기 위해 가했습니다. 고문을 하는 동안 비명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었습니다. 그리고 비명 때문에 목이 부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 즉각 약을 투여하여 목을 트이게 하였습니다(어지러운 듯 말을 중단하고 난간을 붙들면서 잠깐 쉬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9월 4일각 5시간씩 두 차례 물고문을 당했고, 9월 5일, 9월 6일 각 한차례씩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골고루 당했습니다. 8일에는 두 차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고. 10일 한차례, 13일 …… 13일 금요일입니다. 9월 13일 고문자들은 본인에게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가 죽었던 최후의 만찬이다."
"너 장례날이다."

이러한 협박을 가하면서 두 차례의 전기고문을 가했습니다. …… 그 다음에 9월 20일날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한차례 받았습니다. 그리고 9월 25일날 집단적인 폭행을 당했으며 그후 여러 차례 구타를 당했습니다.물론 잠을 못 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밥을 굶긴 것도 대략 절반쯤 됩니다. 고문 때문에 13일 이후에는 밥을 먹지 못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밥을 먹지 못합니다.

... (중략) ...

결국 9월 20일이 되어서는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게 만신창이가 되었고, 9월 25일에는 마침내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만 더 버티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날 그들은 집단폭행을 가한 후 본인에게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쓰라는 조서내용을 보고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1][2][3]

옥중 서신[편집]

내 귀여운 아이들아
애비가 어디 가서 오래 못 와도
슬퍼하거나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
외로울 때는 엄마랑 들에도 나가보고
봄 오는 소리를 들어야지
바람이 차거들랑 옷깃 잘 여며
감기들지 않도록 조심도 하고

알려진 것[편집]

  • 고문실에서 나와 포니자동차로 호송되면서 낯익은 거리, 푸른 하늘이 아직도 있구나, 푸른 하늘이 나에게 다시 왔다, 이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복된 것인가 하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가슴 속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진보적이었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두분이 없어지고 나니 빈자리가 크다. 그 빈자리를 중도실용주의라는, 작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노선 흐름들이 차지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 비전과 대안이 명확하지 않은 채 반MB정서 덕분에 정권을 잡는다면 다시 정체와 좌절이 찾아올지 모른다. 진정 승리하고 싶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되돌아보고 성찰로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하자.

한미 FTA 관련[편집]

  • 참여정부 시절 추진했던 한미FTA를 이제와서 부정하는 것에 부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치인의 자기부정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과오를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은 물론 국민과 역사앞에 더 부끄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 더 이상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길이 아님이 분명해 졌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미 FTA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시기에 지지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교훈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 말로만 반성한들 그 어떤 국민이 믿겠습니까. 우리 민주당이 민주· 개혁·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이라면 반드시 지금 결단해야 합니다. 한미FTA 그것은 우리가 갈 길이 아니었습니다. 국민과 역사의 요구에 우리는 응답해야 합니다.

주석[편집]

위키백과
위키백과에 이 글과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
  1. 강준만 교수. 〈'깃발사건'과 김근태 고문사건〉, 《한국 현대사 산책》, 부제: 광주 학살서울 올림픽. 1980년대 편, 313.
  2. 네티즌 사이 다시 회자된 김 의원 고문사건”, 《오마이뉴스》, 2004년 6월 23일 작성.
  3. 보도 통제·방청 제한…법정 안팎 공권력 장벽, 《한겨레신문》, 2010년 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