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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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영어: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년 5월 18일~1970년 2월 2일)은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이었다.

어록[편집]

  • 나는 체벌은 어떤 상황에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벼운 체벌의 경우 그 폐해는 극히 적지만 아무 효험을 보지 못하고 호된 체벌은 잔인성과 야만성을 낳는다고 확신한다. 사실 체벌을 당한 사람이 체벌하는 사람을 전혀 원망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체벌이 습관화되면 아이들은 익숙해져서 체벌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 마음속에는 권위를 지키기 위해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는 생각이 자라난다.
    • 《특별히 유아 교육에 관하여》(Education, Especially in Early Childhood, 1926);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학대는 이론상으로는 너무나 완벽한 이혼 사유이지만 엉뚱하게 해석되는 수도 있다. 어떤 유명한 영화배우가 학대를 사유로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내가 든 학대의 증거는 남편이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서 칸트(Immanuel Kant)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남편이 이따금 아내 앞에서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잘못을 범했다고 해서 아내에게 이혼을 허용하는 것이 캘리포니아주 입법자의 의도였을 리는 없다.
    • 《결혼과 도덕》 (Marriage and Morals, 1929);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인습적인 교육을 받은 남녀 가운데는 성과 결혼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드물다. 그들은 부모와 교사가 기만과 거짓을 미덕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들은 또한 결혼한 사이라고 해도 성 관계에는 어느 정도 혐오스러운 요소가 있고, 종족을 번식할 때 남성은 동물적인 본성에 굴복하고 여성은 고통스러운 의무를 감수한다는 것을 배운다. 이런 태도로 인해서 결혼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 불만족스러운 것이 되고, 충족되지 못한 본능은 도덕의 가면을 쓴 잔혹함으로 변질된다.
    • 《결혼과 도덕》 (Marriage and Morals, 1929);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기독교 윤리는 성의 미덕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부득이하게 여성의 지위를 강등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도덕론자들은 남성이었기 떄문에 여성들을 유혹자로 보았다. 만일 도덕론자들이 여성이었다면 남성들이 그 역할을 떠안았을 것이다.
    • 《결혼과 도덕》 (Marriage and Morals, 1929);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권태가 전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권태에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과 황폐하게 하는 것, 두 종류가 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권태는 약물이 없는 곳에서 자라나고, 삶을 황폐하게 하는 권태는 활기찬 행동이 없는 곳에서 자라난다.
    • 《행복의 정복》 (The Conquest of Happiness, 1930);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오늘날 양심적인 급진주의자들은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신조에 위배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지향하는 개혁과는 무관한 증오심에 호소해야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 〈급진주의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Why Radicals are Unpopular, 1936);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난파선에 갇힌 선원들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아도 명령을 따른다. 그들은 결코 희미하지 않은 뚜렷한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을 실현할 방법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하듯이 선장이 자신의 명령이 합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선원들에게 조류의 원리를 설명해야 한다면 선장의 강의가 끝나기 전에 그 배는 가라앉고 말 것이다.
    • 《권위와 개인》 (Authority and the Individual, 1949);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정부는 아무리 불합리한 것이라도 일반인들이 믿게 할 수 있다. 만일 내게 충분한 규모의 군대가 있고 그 군대에게 일반인에게 훨씬 많은 보수와 훨씬 좋은 음식을 제공할 권력이 있다면 장담컨대 나는 30년 이내에 "2 더하기 2는 3이다" "물은 뜨거울 떄 얼고 차가울 때 끓는다" 따위의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여러 터무니없는 사실을 국민 대다수가 믿게 할 수 있다.
    • 《환영받지 못하는 에세이》(Unpopular Essays, 1950);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옛날에는 남성의 우월성을 입증하기가 무척 쉬웠다. 아내가 남편의 우월성에 도전하면 남편은 아내를 매질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 《환영받지 못하는 에세이》(Unpopular Essays, 1950);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산업에 과학이 도입된 뒤로 면직물은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시장을 발견했다. 이것은 영국 제국주의를 고무시켰다. 영국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벌거벗고 다니는 것은 나쁘다고 가르쳐야 했다. 그런데 이 일은 선교사들이 거뜬히 해결해주었다. 우리는 면직물 이외에도 결핵과 매독을 수출했다. 물론 뒤의 두 가지는 공짜였다.
    •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The Impact of Science on Society, 1953);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일반적인 반론은 차치하더라도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밝힌 원칙들이 핵폭탄의 효과를 강화하는데 쓰일 수 있다는 주장은 심한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내가 기독교인이라면 이 주장을 극단적인 신성모독으로 여길 것이다.
    •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보는 인간 사회》 (Human Society in Ethics and Politics, 1954);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최초로 종교적 관용을 주창했던 사람들은 사악한 자로 취급받았고, 최초로 노예제를 반대한 사람들 역시 사악한 자로 취급받았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안식일의 금기 사항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사례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 모든 사람이 훌륭하다고 여기는 특정한 행동들은 당시 사회의 도덕률을 비판하거나 위반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보는 인간 사회》 (Human Society in Ethics and Politics, 1954);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기독교 윤리 가운데 니체의 혹평이 정당화될 만한 사항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파스칼과 도스토옙스키의 고결함에는 비열한 면이 있다. 파스칼은 탁월한 수학적 지능을 자신의 신에게 바쳤고, 자신의 병적인 정신적 고뇌를 우주적으로 확장한 야만적 행위를 신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스토옙스키는 '품위 있는 자존심'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으로, 회개하고 참회하는 기쁨을 누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죄를 지었을 것이다.
    •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보는 인간 사회》 (Human Society in Ethics and Politics, 1954);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어린 시절 내가 마치 화강암처럼 영원히 부서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제도들과 생활방식들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 《기억의 초상》 (Portraits From Memory, 1956);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종교의 일차적이고도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한편으로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갖은 곤경이나 분쟁에서 자기 편을 들어줄 형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갈망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모든 것의 토대를 이룬다. 인간은 신비한 것도 두려워하고 패배도 두려워하고 죽음도 두려워한다.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Why I Am Not a Christian, 1957);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나는 음란물 출판을 금지하는 법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법규가 있으면 우둔한 치안판사들이 훌륭한 작품을 우연히 접했다가 충격을 받아 음란물로 규정하고 금지할 우려가 있다. 또한 이런 금지 법규는 음란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대폭 끌어올릴 우려가 있다. 그 무엇이 금지 대상이 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에 미국을 자주 방문했는데 술에 취한 사람들이 법 시행 전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음란물 금지 법규 역시 똑같은 결과를 낳을 거라고 생각한다.
    • 《버트런드 러셀이 자신의 마음을 말하다》 (Bertrand Russell Speaks His Mind, 1960);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 《버트런드 러셀 자서전 1권》(1967);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순희 옮김)에서 인용.

출처 없음[편집]

  • 저명한 인물들 중 대다수는 기독교를 불신하지만, 대중에게 그 사실을 숨긴다. 혹시 수입원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1]
  •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
  • 종교는 인류에게 커다란 해악을 저질렀으니, 모든 두려움은 나쁘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내가 죽으면 썩어 없어질 뿐 나의 에고 따위가 남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내 나이는 젊지 않지만 삶을 사랑한다. 그러나 내가 허무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공포로 몸을 떠는 모습에 대해선 경멸한다.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는 건 그것에 끝이 있기 때문이며, 사고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제 가치를 잃는 것도 아니다.
  • 전쟁은 누가 옳느냐를 가리는 게 아니라, 단지 누가 남느냐를 가릴 뿐입니다.
    영어: War doesn't determine who is right. only who is left.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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