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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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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관한 다음의 속담 및 명언이 있다.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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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전쟁으로 수많은 장병들이 승진하기도 하고, 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내게 찾아온 것은 불운과 재난뿐이었다. 나는 버크셔 연대로 전속된 뒤,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마이완드 격전에 참가했다. 그 전투에서 제자일 탄에 맞아 어깨뼈가 부서지고 쇄골 밑 동맥을 다쳤다. 만약 부하인 의무병 머레이가 죽을 각오를 무릅쓰고 나를 구해 주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나는 잔인한 회교도 병사에게 붙들려 갔을 것이다.
    • 《진홍색 연구》(셜록 홈즈 시리즈의 일부). 존 H. 왓슨 박사의 발언. 문예춘추사. pp.9~10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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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일 누군가가 이리로 와서 날 선 청동에 맞지도, 찔리지도 않고,
팔라스 아테네가 빗발치는 무기들을 막아주며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이 한복판을 돌아다녀볼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일을 두고 더는 무어라 할 수 없으리라.
그만큼 많은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아인들이 바로 이날
얼굴을 흙먼지 속에 처박고 서로 나란히 누워 있었으니.


  • 카이사르는 정찰병들에게서 헬베티이족이 자기들 군대의 4분의 3은 벌써 도하(渡河)시키고 4분의 1 정도가 아라르 강의 이쪽 강둑에 남아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자정 조금 지나 3개 군단을 이끌고 진지를 떠나서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한 그들의 병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무거운 짐을 운반하던 그들을 불의에 공격하여 다수를 죽였다. 나머지는 달아나 가까운 숲에 숨었다. (중략) 우리 아버지 때 티구리니족은 독자적으로 고향을 떠나 집정관 루키우스 캇시우스를 죽이고 그의 군대가 '멍에'밑을 지나가게 했다. 그리하여 우연에 의해서든 불사신들의 계획에 의해서든 전에 로마 국민에게 치욕스러운 패배를 안겼던 헬베티이족의 이 지파가 맨 먼저 벌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카이사르는 국가적인 원한뿐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도 풀었다. 그의 장인 루키우스 피소의 할아버지로 부관이었던 또 다른 루키우스 피소도 같은 전투에서 캇시우스와 마찬가지로 티구리니족의 손에 죽었으니 말이다.


  • 날이 갈수록 적군의 포위공격은 더 거세지고 더 잔인해졌다. 무엇보다 아군 중에 부상자가 속출하여 소수의 병사들이 방어 임무를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태가 점점 악화되자 퀸투스 키케로는 카이사르에게 서찰을 보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아군 전령 가운데 몇 명은 붙잡혀 아군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고문당하다가 죽었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 원정기》. 천병희 역. p.169. 제5권 45장 1행


  • 수없이 많은 전쟁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음을 우리는 쉽게 망각하곤 한다.
    • 볼테르.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 p.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