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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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崔章集, 1943년 5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다.

목차

어록[편집]

  • 한국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들의 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나눌 수 있는 갈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며, 그것은 곧 정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 여전히 우리는 냉전반공주의와 그에 대응하는 급진적 민족주의 간의 갈등 구도를 목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러한 갈등 구도의 정치적인 효과는 극히 한국적인 양태로 나타난다. 즉 그것은 서구와 같이 사람들같의 실제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장경제나 생산체제와 관련된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좌우 정당 간 갈등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헌정주의: 미국과 한국〉(2004)[편집]

민주주의와 헌정주의: 미국과 한국 (한국어판 서문). Dahl, R. A. (2001).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박상훈․ 박수형 (역)) (2004). 후마니타스.

  • 의식의 타율성의 전개는, 이와 아울러 대위법(counterpoint)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영역을 확대해 가는, 의식의 자율성이 성장하는 것을 동반한다.
  • 민주주의는 그 형태와 내용이 어떠하든, 민중적 동력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적 민주주의의 요소를 중심에 포괄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라고 보기 어렵다.
  •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양태가 어떠하든 민중적 동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지속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이해하는 관점이다. 둘째는 민주주의라는 정치경쟁게임(규칙)과 제도는, 결과의 불확실성을 창출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를 지속시키는 제도의 효과를 중시하는 관점이다. 필자는 첫 번째 관점에 서 있다. 왜냐하면 제도는 그것이 작동하는 토대이자 실질적 효과의 내용으로서 사회적 기반을 끊임없이 재생하지 않는 한, 쉽게 그 원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빠르게 쇠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 민주주의는 상충하는 모순적인 요소들의 좋은 결합과 이를 통한 동태적인 균형 위에서 존립한다.
  • 인민 다수 혹은 그 대표에 의해 의회에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져야 할 문제가 9명 재판관들의 다수결에 의한 결정으로 환원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 헌법의 문제는 곧 민주주의의 문제이고,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정치의 문제로 집약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초판, 2002; 개정1판, 2005; 개정2판, 2010)[편집]

개정 2판

이 책을 쓴 이유[편집]

  •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계급 간 불평등 구조는 훨씬 빠른 속도로 심화되어 왔으며, 과거 교육과 근면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이동의 기회는 크게 줄어들었다. 어느덧 서울의 강남을 중심으로 상층계급 문화가 발전하고 소득과 교육의 기회가 점차 정비례하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면서 중산층 상층의 특권화된 사회 부분과 나머지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 부분 간의 괴리는 심화되었다.
  •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것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 실망이 실망에서 끝나거나 환멸이 환멸로 끝난다면 민주주의는 물론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 민주화 이전에 가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좁은 관점으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기는커녕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겠다.
  • 더 넓은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토크빌이 보았던 것처럼 정치의 체제이기보다 '사회의 상태'를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최소 요건을 갖춤으로써 스스로 자기 발전의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어떤 지적·도덕적·문화적 토양을 발전시키는가에 따라 더 좋은 내용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똑같지 않다.

1장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자화상[편집]

  •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매우 협애한 이념적 대표 체제, 사실상 보수만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 체제(the system of representation)에 있다고 본다. 내용적으로 보수 편향의 정치 구조는 민주화 이후에 변화되기보다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 냉전 반공주의가 지배하는 보수 편향의 정치적 대표 체제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결과는 무수히 많다. 직접적으로 그것은 …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지속시킨다.
  • 누군가 나에게 한국 정치는 누가 움직이느냐고 질문한다면, 한국 정치는 언론이 움직인다고 말할 것이다.
  • 언론은 준사법적 기능을 한다.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의 도덕성과 불법성에 대한 판단은 언론에서 먼저 내려진다. … 언론은 한 개인의 정신과 내면의 영역까지 임의적으로 개입하고 판단해 … 이른바 '사상 검증'을 자유롭게 해댄다. … 사법부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초법적 태도를 보여 주는 경우도 많다.
  •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을 단순화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그 보수성에 기인하는 바 크다는 것이다.

2장 국가 형성과 조숙한 민주주의[편집]

  • 헌법은 현실과 크게 괴리되었다. 그 결과 헌법 조문을 제대로 읽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헌법 경시의 풍조가 나타났다.

3장 권위주의적 산업화와 운동에 의한 민주화[편집]

  • 박정희 정권이 직접적으로 민주주의를 낳은 것은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은 그 붕괴를 통해 향후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계기를 남겼다는 것은 분명하다. … 요컨대, 박정희 정권은 권위주의를 제도화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민주주의로의 길을 연 것이다.
  • 한국의 경우는 "운동 없이 민주화 없다"라고 말해야 한다.

4장 민주화 이행의 보수적 종결과 지역 정당 체제[편집]

  • 민주 정부의 실패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 기득 이익의 강력함, 여소 야대, 지역 기반의 소수자적 협애성 등과 같은 요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민주적 리더십의 약함과 정부 운영 능력의 약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 정부의 실패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술 관료적 경영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참여를 확대하고 이를 통한 민주적 국정 수행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조직적 기반과 리더십을 끊임없이 민주화하는 것만이 집권 민주 정부가 유능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5장 민주화 이후의 국가[편집]

  • 민주주의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영역 가운데서 경제로부터 정치의 분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 내가 이 책에서 시종일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냉전 반공주의가 한국의 정당 체제를 이념적으로 극히 협애한 틀에 가두어 놓았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갈등이 대표될 수 있는 여지를 극히 좁혀 놓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50년대 이래 냉전 반공주의의 헤게모니는 갈등 그 자체의 언표화를 어렵게 만들고 무조건 통합하자는 식의 갈등 부재의 담론을 지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8장 민주주의의 민주화[편집]

  • 우리가 민주주의를 능력 있게 한다고 말한다면, 구체적으로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핵심은 국가를 민주적으로 능력 있게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는 권위주의로부터 벗어나는 문제, 즉 민주주의냐 아니냐의 이분법적 접근이 중요하지만, 민주화 이후에 이런 구분은 문제를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민주화되었느냐, 사회경제적인 요구와 이슈를 해결해 가는 데 있어서 실질적으로 얼마나 많은 진전이 있었느냐 하는 데 있다. 즉,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스펙트럼상에서 정도의 문제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는 '보통 사람, 시민들 스스로의 통치 체제'라는 민주주의의 정의 자체가 함축하듯이, 정치적 평등민중성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전통적인 민주주의 국가들이 실현했던 자유주의-민주주의의 연계의 형성은 분명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모델이자 경로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며,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들 자신의 경험과 조건을 토대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민주주의인가》 (1판, 2007; 2판, 2013)[편집]

최장집, 박찬표, 박상훈, 《어떤 민주주의인가》 2판

2장 왜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를 말하는가[편집]

  • 매니페스토 운동은 주요 선거에 대한 사무를 독립된 국가 기관이 담당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 그러나 그것은 대중 참여를 대체하거나 억제하는 방법일 수는 있어도 확대하는 데 기여하기는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대중 참여 기제로서의 정당의 성격을 약화시키면서 그 자리를 선거 전문가 내지는 지식인 정책 전문가들로 대체하는 것이기도 하다.
  •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반정치적 태도와 정조는 보수파와 진보파 모두가 공유하는 방향으로 보인다. 이런 태도와 정조는 대의제 민주주의 중심 기제로서 정당과 의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동시에 그것은 시장 포퓰리즘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기대와 기묘하게 결합하면서 반정당적 정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 민주주의는 그 가장 본질적 측면에서 개인들이 평등한 정치적 시민권의 획득을 통해 그들 스스로가 통치하는 체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시민 개개인은 그들이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조직될 수 있어야 하고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정치 행위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3장 강력한 대통령제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가[편집]

  •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선거 경쟁을 통해 다수의 지지를 받는 대표가 권력을 가지는 체제이고, 당시의 관점에서 그 다수 민중의 힘은 의회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대통령과 집행부에 대해 의회가 우위에 서는 체제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매디슨의 이와 같은 민주주의 인식은 미국 민주주의 제도화의 초기에나 합당한 관점이라 하겠다.
  •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민중적 의지와 열정이 민주적 대통령의 창출로 표현되었던 힘의 실체적 내용과 이념은 상당히 애매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정당-의회보다 대통령으로 경도되었다는 사실은 사회의 특수 이익과 그와 관련된 이슈보다는 국가 전체, 사회 전체의 전일적 이익과 목표를 더 강력하게 지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근거에서 한국 사회 민주화 운동의 정조와 이념은 부분 이익을 부정하고, 국가와 사회 전체의 이익, 민중의 일반 의지를 지향했던 프랑스 자코뱅주의와 비교될 수 있을지 모른다.
  • 대통령 권력의 비대화는 그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사회 세력 간 힘의 균형의 상실이나 파괴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대통령제에서 권력 견제를 위한 장치로서 삼권분립은 애초 사회적 힘의 균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바꿔 말하면, 사회적 힘의 균형이 뒷받침되지 않는 삼권분립은 헌법에 규정된 형식적 제도로는 존재할 수 있어도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의 독점과 자의성을 방지하기는 어렵다.
  • 대체로 대통령제의 장점을 말하는 사람은 의회 중심제에 비해 대통령제에서는 유권자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가 누구인지 인물을 확인하기 쉽고, 지도자로서 그의 역할과 그의 정부에 대한 업적 평가가 분명하기 때문에 대표-책임의 원리를 더 잘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린츠의 주장이다. 한국의 경험은 린츠의 주장과 일치한다. … 대표-책임이 당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회 중심제가 좀 더 안전한 대표 검증의 체제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 대통령제에서 삼권분립의 강화는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강력한 대통령과 집행부의 권력을 견제하기는 어렵다. … 의회 중심제는 대표-책임의 원리가 가장 분명하게 실현되는 고전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의회 중심제는 유럽의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대통령제 못지않게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 후보 검증의 기준에서 한국의 현행 대통령제는 최악의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 한국은 정당 제도화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의 기반이 극히 불안정하다. 한국에서는 후보 검증을 위한 정당의 리더십 위계가 취약하기 때문에 후보 선출 과정은 곧바로 대중 매체를 통한 후보의 이미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압도적이다.

4장 원내 정당론과 국민 경선제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기 어려운 이유[편집]

  • 필자의 관점에서 정당은 일반 대중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고, 사회 균열과 갈등을 대표하고 조직하며, 다른 정당과의 선거 경쟁을 통해 그들의 권익을 실현하고, 또한 정당 간 협력을 통해 정치제도를 작동시키는 민주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 점에서 필자와 원내 정당론자들과의 정당관은 대척점에 서있다. … 원내 정당론이 그려 보이는 정책 결정 방식이 다양한 이익과 요구, 참여와 압력으로부터 차단된 정치 환경에서 최고 통치자와 그를 둘러싼 소수 지식인 전문가 집단이 중심이 된 기술 관료적 결정 방식을 가진 권위주의 체제와 무엇이 다른지 구별하기 어렵다.

9장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길[편집]

  • 저성장, 고용 불안, 빈부 격차, 양극화 등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 중심에는 노동시장 문제가 위치한다.
  • 무엇보다도 이는 노동시장 문제, 노동과 사회복지 체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힘의 관계와 맥락, 그리고 행위자들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중요한 변수로 불러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즉, 노동문제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 문제의식과 밀착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11장 한반도 평화의 조건과 구조: 칸트의 영구평화론의 관점에서[편집]

  • 한반도 평화의 관점에서 볼 때 현실적인 대안은 북한에 대한 포용 정책이다. 북한을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정상적인 행위자가 될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인정하고 경제적 생존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민중에서 시민으로》(2009)[편집]

1장 민주주의와 갈등: 왜 민주주의는 갈등을 필요로 하는가?[편집]

  • 갈등 없는 무균질 사회, 청정 민주주의를 꿈꾼다면, 사실상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어떤 전체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 민주주의는 그것의 발생 과정에 있어 전복적 성격을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민주화 이전의 전제정이나 권위주의체제에서 종속적 지위에 있던 인민 또는 그 일부가 지배권력에 맞서 저항하고 도전함으로써 발생하기 때문이다.
  • 민주주의는 잠정적으로 형성된 다수에 기반해서 통치되는 정치체제기 때문에, 이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보다 강력한 갈등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 현실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기준은 인민 내지 시민이 어떻게 자신들이 선출한 대표를 통해 정부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의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인민의 동의에 바탕한 통치체제다.
  • 민주주의는 사회균열로부터 발생하는 갈등을 억압하기보다는 이를 민주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고 해소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는 정치체제다.

2장 국가와 시민사회: 왜 여전히 강력한 국가를 말하는가?[편집]

  •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민주화 이후 운동의 존속은 의심의 여지없이 정당제도의 미성숙 내지 실패에 따른 결과라는 점이다.
  • 여기에서 강조코자 하는 바는 자유주의 철학의 핵심 주장, 즉 국가권력은 견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는 시민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3장 사회적 시민권: 신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편집]

  • 신자유주의 정책들이란 어떤 정연한 경제 원리에 입각한 일관된 정책 대안들의 패키지가 아니라, 창의성과 실천 능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와 정당들이 현실의 여러 정책 영역에서 발굴하고 개발한 이슈와 정책 프로그램들의 결합이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 민주주의는 하나의 독립적인 가치이자 원리로서 시장가치와 병행해서 강화되고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 시민권은 민주주의가 그렇게 기능하도록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권리 가운데 하나다.

4장 운동론과 민주주의: 민중, 시민, 그리고 시민권[편집]

  • 우리가 자족하기에 충분할 만큼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가 좋은 내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필자는 매우 회의적이다. 우리가 권위주의를 혁파하고 민주주의를 건설코자 투쟁했을 당시에 품었던 희망과 요구들이 얼마나 실현되었는가를 기준으로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 운동권 담론의 중심에는 '총체성'의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유신체제와 군부권위주의 세력에 의한 국가 폭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되었던 1980년 광주항쟁의 정치적 경험과 이후 반독재 투쟁이라는 배경을 반영한 것이다. 그것은 기존 체제에 대한 총체적 부정의 산물이다.
  •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에조차 한국의 시민은 수줍은 또는 망설이는 모습으로 매우 소극적으로 표현된다. 그냥 시민이라고 말해지기보다는 더 자연스럽게 민주화운동이 남긴 개념으로서 '민주시민'이라든가, '시민사회'라는 말과 더불어서만 시민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운동권 개념의 범위를 벗어나 시민이라는 말이 학교에서나 언론에서, 그리고 일상 언어에서 사용되는 것을 듣기란 쉽지 않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한국 사회에서 시민은 여전히 말의 시민권조차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느껴진다.

5장 광주항쟁의 세 가지 의미[편집]

  • 광주항쟁은 두 측면의 결과를 낳았다. 한편으로 광주항쟁의 결과는 곧바로 민주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사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끝내 군부 권위주의의 해체와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가져오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광주항쟁이 창출한 세 개의 중심 언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그렇게 인식되고 스스로 자각한 사회집단으로서의 '민중'이다.

6장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편집]

  • 정치 현상에 대한 경제학적 비유는 현상에 대해 명쾌하고 강력한 요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지만, 정치 현상과 경제 현상 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간과함으로써 설명 대상이 되는 정치 현상의 중요힌 특징을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선거시장의 유권자와 상품시장의 소비자가 보이는 행태는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 구조의 측면에서 상당히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 이번 대선의 저조한 투표율은 정치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대표하는 통로가 약해졌기 때문이며, 그 결과 투표할 대안을 갖지 못한 유권자들이 참여의 유인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이 점에서 현재 한국의 정당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구조적으로 기권을 강요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 권위주의체제는 종식되었지만 정치, 경제, 사회 대부분은 민주화 이전과 높은 정도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가운데, 결국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많은 희생을 들여 투쟁했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한국이 진보정당 없는 정당체제로 귀착되고 마는 것이 아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민주주의의 제도화된 정치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힘을 조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뚜렷한 가치 지향과 정책 목표를 갖되 그것을 실현 가능한 정책과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정당의 존재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2011) 제1부[편집]

최장집, 〈강의: 정치가는 누구인가〉, 막스 베버,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 한마디로 말해 두 명제 사이에 어떤 것을 양자택일적으로 선택하는 정태적 차원의 문제로 베버의 중심 사상을 이해하려 한다면 그건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이들 대쌍적 개념이 현실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 나아가 인간 행위와 사회 변화의 과정 속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가를 분석하려 했다는 데 있다. 일례로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옳고 우월한가로 접근하는 것은, 최소한 베버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다.
  • 베버의 텍스트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긴장을 주고, 양극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종종 그 의미가 모호해 보이지만 그로부터 무한한 지적 자원을 발견하게 되는 마술과 같은 힘을 갖는다.
  • 베버는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구분함으로써, 두 개의 대립적이고 양립할 수 없는 명제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이율배반적 구조가 정치 행위의 본질적인 측면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적 현실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이중적이고 모호한 것인가를 동시에 일깨워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 행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균형적 판단, 절제, 나아가서는 겸허함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2012)[편집]

서문[편집]

  • 민주화 이후 이제 4반세기를 지나고 있는데도 우리 정치가 아직도 (사회의 저항에 위기감을 느낀 통치 세력들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개혁에 나서는) '수동 혁명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 노동의 시민권이 노사 관계와 정당 체제에서 취약해질 때 그것의 부정적 효과는 사회 전반의 공동체적 결속을 해체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 노동이 배제되면 노동자만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주요 이익 모두가 배제된다는 것,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여기에 있다.

1부 삶의 현장에서 보는 한국 민주주의[편집]

  • 공허한 담론과 추상적 이념의 언어가 지배하는 곳에서 민주주의의 실체적 성과는 만들어질 수 없다. 새벽의 인력시장은 그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닌 이 지극히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 1. 일용직 노동자들의 감춰진 상처들
  • 정치체제의 민주화와 노사관계의 민주화는 병행하여 발전할 수 없는 것인가? 노사 간의 협력적 상호관계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합할 뿐 아니라 보다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체제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 2. 현대차와 노동 없는 생산 체제의 문제
  • 민주주의라면 적어도 이상적 기준에서는 정치 참여의 평등이라는 원리에 힘입어 모든 사회적 이익과 요구들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대표되고 조직됨으로써 그들의 이익들이 정치과정을 통해 부분적으로라도 실현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봉제 공장의 고용주-노동자들은 자율적 결사체의 효능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그것을 상상할 수 없고, 그것을 시도할 필요를 느낄 수도 없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정치과정이 곧 경제력의 크기 내지 시장의 불평등한 효과를 그대로 반영해 온 것의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 3. 장위동 봉제 공장에서
  • 분배와 복지 없는, 성장만을 위한 경제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진부한 느낌이 들 정도다.
    • 4. 전주 덕진의 자활 센터를 다녀오다
  • 경제성장과 시장효율성의 가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그에 대응하는 인간주의적 가치를 정립하지 않고서는 복지국가로의 질적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복지정책과 제도가 성장주의의 잔여 범주로 실현될 때, 복지 수혜에 대한 대가는 사회 낙오자 내지 열패자라는 낙인(stigma)이고, 그로 인해 수혜자는 경제적 능력과 아울러 사회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 4. 전주 덕진의 자활 센터를 다녀오다
  • 과거와 같이 ‘국가 대 시장’이라고 하는 이분법은 지금과 같은 경제체제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방해한다. 대기업은 시장의 한 부분이 아니라 시장과 국가 모두로부터 독립해 있고 또 그들을 규제하는 제도적 실체가 되었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의 과도한 영향력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 이들에 의해 변형된 국가 관료제와 여론매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대기업의 독점적 영향력으로 인해 파괴된 시장경쟁과 효율성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에 있다. 한마디로 말해 중소기업과 소매업체들의 경제적 활력을 복원시키는 일은 단순한 온정적 조치가 아니라 한국경제와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문제라는 것이다.
    • 5. 공덕동 재래시장에서

2부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위하여[편집]

  • 민주주의가 일반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없다면, 사회적 불만이 확대되는 것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의 기반도 약해질 것이다. 이런 관점은 현재와 같은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의 원인을 이해하는 방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그것이 IMF 위기라는 외부로부터의 경제적 충격에 의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민주 정부들의 정책적 대응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이해한다.
    • 1.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 평등의 원리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불평등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와 항상적인 긴장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양자 간의 긴장 관계와 갈등은 민주주의 자체를 제약하는 원천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 간의 갈등이 크건 작건, 민주주의는 건설적인 타협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한 바 컸다.
    • 3. 한국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
  • 추상화되고 도덕화된 반대담론이 강해질수록, 정치의 방법으로 일을 성사시키는 ‘진지한 정치’는 필요치 않게 된다. 뜨거운 열정의 동원에 몰두하는 정치는 실제의 사회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내용적으로 더 얄팍해진다.
    • 3. 한국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2013)[편집]

최장집, 박찬표, 박상훈, 서복경, 박수형,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2013)

1장 한국 민주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나?[편집]

  • 나는 있는 사실 내지 경험된 현실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우선시되고, 그 지식의 기초 위에서 사태에 대한 평가나 가치판단이 진실된 내용을 갖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정당한 것이냐에 관한 판단은 사실에 대한 지식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럴 때만이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한 현실적 전망 또한 가능하다.
  •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시장의 힘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 못지않게, 민주주의의 힘이 또한 정책적 조치들을 통해 시장구조와 생산 및 분배를 일정하게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경제와 정치는, 경제가 정치를 결정하는 것도, 그 반대도 아닌 쌍방향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민주화 이후 사회경제적 결과가 나빠졌다는 말은,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효과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민주주의가 강하게 발전하지 못한 결과임을 의미한다.

2장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편집]

  • 민주주의는, 인간자유평등의 권리를 기반으로 도출되는 정치 참여의 평등을 통해 보통 사람들이 그들의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고, 그들의 의사와 요구, 이익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다른 체제에 비해 우월하다. 그러나 이런 체제의 우월함이 민주화에 의해 그대로 발현되어, 보통 시민들,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혜택이 부여되는 사회경제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결과는 권위주의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4장 진보적 지식인의 변형[편집]

  • 내 생각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의 황금기는 민주화 운동의 고조기에서부터 야당이 집권하기 이전이었던 1990년대 중반까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 시기 진보적 지식인 사회는 어디까지나 그 중심 활동 영역이 제도권 밖에 있으면서, 권력 밖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적 역할을 담당하는 데 앞장섰다.
  • 진보적인 학문 행위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로부터 문제를 찾아내고 진보적인 가치나 이론에 입각해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라 할 때, 이제 그런 학문 행위를 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 진보적인 지식인, 시민사회가 공유했던 개혁에 대한 지향은 그들의 보수적 상대파의 지향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향했던 정치 개혁의 실제 결과는 정당정치의 민주적 발전에 역효과를 낳았다.
  •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는 이들 집단주의적 형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적·철학적 이념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이를 적극적으로 요청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한국어판 서문 (2014)[편집]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적 도전과 성취〉, 니콜로 마키아벨리,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박상훈 옮김), 후마니타스, 2014, p. 9-93

  • 마키아벨리에 대한 해석과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은, 실로 그가 많은 얼굴을 갖는 철학자이자 이론가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의 언어와 수사는 양면적이고, 나아가 자신이 말하려는 것을 의도적으로 숨기면서 정반대되는 것을 동시에 말하기 때문에 다성적(多聲的)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 홉스가 기독교의 가정과 정신세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논의를 전개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마키아벨리는 그보다 더 근대적이고 더 급진적이며 더 혁명적인 사상가였다.
  • 혼란의 와중에서 메디치가에 대한 기대가 순진했든 아니든 간에, 마키아벨리는 공화국과 군주국 사이의 관계 혹은 군주국의 새로운 국민적 과제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성찰을 이끌어 내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새롭게 태동하는 국제 관계를 바라보면서 개별 국가가 감당해야 할 정치적 과업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꿰뚫어 본 작업이 아닐 수 없다.
  • 정치는 인간의 이기적 이익 추구가 빚어내는 권력을 둘러싼 쟁투 그리고 그것이 동반하는 악·폭력·부패·타락과 같은 부정적 현상과 불가피하게 혼합될 수밖에 없다. 이런 성격들이 정치의 특성을 만들어 낸다. 정치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된 고대 그리스 이래로 철학자들은 정치를 이상적이고 도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이 딜레마를 해결해고자 했다. 중세 기독교 시대에는 종교적 목적에 부합하는 정치만이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결과적으로 정치를 부정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정치와 윤리,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로 결함됐고, 정치는 윤리의 하위 범주 내지 종교의 세속적 실천을 위한 한 하위 분야로 자리 매김되었다. 앞의 것이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르는 정치철학이라면, 뒤의 것은 기독교적 전통에서 이해되는 정치사상이다. 그러나 정치를 도덕적 규범이나, 종교의 세속적 실천의 규칙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더 멀어지고 정치의 타락은 더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키아벨리가 보았던 것은 이 패러독스이다.
  • 인간역사가 전향적인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적으로 움직인다고 믿었던 마키아벨리의 역사관은, 근대 계몽주의 내지 그 이후 현대적 진보 이론이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전제하는 역사관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진보의 역사관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사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에 반해 마키아벨리의 순환론적 역사관은 '정체 순환'과 '혼합정체'를 강조한 폴리비오스의 역사관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가 크다.
  • 마키아벨리는 인간 행동에 있어서 탁월함의 기준을 과거의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과거를 초월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역사 속의 모델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한 바람직한 출발은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것, 즉 그것을 재생이나 경신, 부흥 등 뭐라고 부르든 과거의 덕을 부흥시키는 것에 있다는 의미로 본다면, 16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정치사상가가 고대의 전범으로 되돌아가려고 애썼다는 사실은 커다란 역설로 느껴진다.
  • 인간성에 대한 이런 비관적 관점은 그로부터 추론되는 특정의 이론적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특히 다음의 두 가지 점을 말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갈등을 인간 정치 행위의 본질로 이해한 것이다. ... 두 번째는, 정치에서 선택은 이상주의적인 최선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최소주의적' 접근 내지는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 이들 사례는 체제의 평온과 안정을 유지하는 것과 제국의 위대함을 실현하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었으며, 각자는 장점과 단점을 나누어 가질 뿐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물론 두 체제 유형의 장점들만을 취합하는 최선의 선택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다.
  •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어떤 방법을 사용하지 말 것인가의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 마키아벨리는 그 행위의 최종적 결과를 고려하라고 말한다. 정치적 판단의 근거로 수단 선택의 결과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분명 결과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결과주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주장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실천적이고 공리주의적인 기준을 통해 행위의 근거를 풍부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덕적 의무론에 결박되어 있던 기존의 경직된 정치 이론에 대응하려 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공정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상주의·도덕주의의 전통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과 그 실천의 내용 속으로 깊숙이 침윤되면서 정서적 급진주의를 창출하고, 쉽게 교조주의를 만들어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는 원천으로 작용해 왔다. 이 측면에서 마키아벨리적·베버적 이상과 현실, 가치와 사실의 분리에 대한 강조는, 현실로부터 괴리됐거나 현실과 엷게 연결돼 있는 이상주의와 그로 인한 정서적 급진주의에 대해 무엇보다 효과적인 해독제가 될 수 있다.
  • 한국의 역사와 정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영향력에 의해 크게 규정된다. 그것이 조선 시대의 유교적 덕이든, 현대 한국 사회의 냉전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혹은 다른 어떤 진보적 이데올로기이든, 그런 지배적 이념들은 사회적 가치를 다원화하거나 확대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그것이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자유와 다원화의 힘들을 단원적(monistic) 가치 체계의 틀 속으로 옥죄면서 지적 몽매주의(obscrurantism)를 부추겨 왔다.
  • 정치의 이데올로기화는 정치 현실과 사회적 갈등을 그 자체로 인식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억제하는 효과를 갖는다. ... 이데올로기의 정치는 마키아벨리가 좋은 정부 형태의 모델로 삼았던, 소란스럽고 갈등적이지만 역동적인 로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 오늘의 한국 정치 현실과 관련해 볼 때, 그 어느 측면에서의 구분을 말하든 간에 현실주의가 약한 것은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 마키아벨리의 해석에 있어 맥코믹의 학문적 기여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지배적인 이론 틀에 의해 가려져 있던 측면들을 찾아냈다는 점, 그럼으로써 그동안 간과되거나 상대적으로 주변화되었던 민중 스스로의 통치 체제의 문제의식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임브리지학파의 공화주의적 해석이든, 맥코믹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적 해석이든 마키아벨리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마키아벨리 이론의 전모는 민주주의적 통치 체제를 구성하는 두 측면, 그러나 두 측면이 정태적으로 병립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상호 관계를 통해 하나로 통합되는 것, 그러나 그 통합은 어디까지나 동태적으로 결합·재결합되는 실천의 영역, 정치적 행위의 여역에 위치할 때 일시적으로 포착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 점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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